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내일이다. 123주년 노동절이다. 메이데이(May Day)라 불리는 세계 노동자의 날이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해서 1886년 5월1일부터 전개됐던 미국 노동자의 총파업 및 시위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은 매코믹 농기구 공장 앞과 헤이마켓 광장에서 시위했고 분노했다. 그것은 경찰 등 권력과 자본에 철저히 짓밟히고 말았고 노동자의 피로 얼룩졌다. 그리고 1889년 7월14일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2 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여기서 미국 노동자투쟁을 기념해서 5월1일을 노동자의 날로 정했다.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하자”는 제2 인터내셔널의 연대결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날을 기념하고 8시간 노동제를 위해 1890년 5월1일 전 세계에서 시위하기로 했다. 이렇게 노동절은 노동자의 날로 이 세상에 왔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으로, 8시간 노동제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을 위해서 이 자본의 세상에 왔다.

2. 그 뒤 해마다 노동절을 기념해왔다. 세계의 노동자들은 그가 사는 나라와 도시는 달라도 이날을 노동자의 날로 기념해왔다. 123년이 지나도록 세계노동운동은 이날을 노동자의 날로 행사해왔다. 우리의 경우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이 최초로 노동시간 단축 등을 외치며 노동절 행사를 한 뒤 일제의 탄압에도 해마다 이날을 기념해서 투쟁했다. 해방 뒤에는 처음으로 열린 1946년 5월1일 전평의 노동절집회에 20만 노동자가 참석해서 8시간 노동제 즉각 실시 등을 외쳤다. 그러나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이 아닌 3월10일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을 노동절이라 불러 기념하다가 그마저도 5·16 쿠데타 뒤인 1963년 제정된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은 근로자의 날로 바꿔서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정했다. 그리고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1989년 이후 다시 5월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3월9일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을 개정해서 근로자의 날을 3월10일에서 5월1일로 변경했고 지금까지 이 나라는 5월1일을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5월1일을 노동운동은 노동절로, 권력과 자본은 근로자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으로 노동절을 기념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무엇으로 2013년 5월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하고 있다는 것인지, 자료를 통해서 보면 내게는 그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을 망라해서 요구로 주장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3. 이 세상에서 노동절은 8시간 노동제 투쟁의 날로 왔다. 그러니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한 뒤 오랫동안 세계 노동운동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시위로 이날을 기념해왔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뒤 자주적 노동운동은 8시간 노동제를 빼놓지 않고 주장해서 시위로 이날을 기념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노동절은 더 이상 8시간 노동제 투쟁의 날이 아니다.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유럽 등 이른바 선진의 노동운동이 노동절을 8시간 노동제 투쟁의 날로 기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그것은 노동자권리로 쟁취됐기 때문이다. 이미 8시간 노동제는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권리 쟁취를 위해” 파업하거나 시위할 필요가 없는 노동자권리로 됐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이미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제1호 협약으로 1일 8시간, 1주 4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노동제를 채택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것을 각 나라들에서 노동자권리로 확보해왔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도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으니 8시간 노동제는 쟁취된 것이라고 더 이상 기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그런 것이라고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8시간 노동제 투쟁을 기념해서 제정된 노동절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동절은 120여년 전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해서 투쟁했던 날이라고, 그 날을 기념해서 세계노동운동이 8시간 노동제로 시위하는 날이었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8시간 노동제가 쟁취된 것이라고 기념사를 하면 그만인 것인 날이다. 그러니 노동절은 그저 노동자권리로 쟁취해야 할 것들을 주장해서 시위하든가 아니면 노동자단합행사를 하면 되는 날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나. 우리의 경우 120여년 전 미국 노동자들이 공장과 광장에서 외쳤던 8시간 노동제가 쟁취된 것이 아니라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절을 노동절로서 기념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된다. 1886년 5월1일부터 미국 노동자들은 1일 1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을 1일 8시간만 노동하는 것으로 단축시키겠다고 시위하고 파업했다. 연장근로수당을 지급받는 기준시간을 1일 8시간으로 법으로 정하라고 경찰의 발포에 맞서 투쟁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노동운동이 이날을 노동절로 기념해서 8시간 노동제를 외쳤던 것은 1일 8시간 초과해서 노동하는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50% 가산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그것을 법으로 정하라고 시위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연장근로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시간이 몇 시간이든, 연장근로수당이 얼마 지급되든 장시간 노동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1일 8시간만 노동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투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노동운동은 쟁취했다. 그러나 우리는 쟁취하지 못했다. 우리의 경우 근로기준법에서 1일 8시간 노동제는 연장근로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기준근로시간일 뿐이다.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노동해도 법위반이 아니다. 사용자는 아무런 제한 없이 근로자와의 합의만으로 1주간 12시간 한도로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 이것은 휴일근로, 야간근로도 마찬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서 합의는 연장근로를 할 때마다 그때그때 할 필요도 없고, 근로계약 등으로 미리 약정하는 것도 가능하며, 단체협약에 의한 합의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1990.1.12 근기 01254-450, 대법원 1993.12.21 선고 93누5796 등). 그저 근로계약서에 근로시간을 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시간을 규제한다는 법은 아무런 제한도 없이 1일 8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그리고 1주 40시간에 12시간까지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여기에 휴일근로 2일까지도 별도로 허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무제한 장시간 노동제가 이 나라의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제인 것이 된다. 이처럼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를 두고 있지 않다. 단지 연장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기준근로시간으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리니 오늘도 뉴스에 현대자동차노사가 휴일근로 실시에 관해서 합의했다고 이 나라는 안도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1886년 미국 노동자가 2013년 이 나라에 와서 본다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자신의 세상에 놀랄 것이다. 그럼에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노동하지 않도록 법으로 제정해달라는 8시간 노동제를 위한 투쟁을 망각하고 있는 이 나라 노동운동에 더욱 놀랄 것이다.

4. 내일 이 나라 노동운동은 다시 노동절을 기념할 것이다. 123주년 된 노동자의 날을 시위와 행사로 기념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절이 기념하고자 한 투쟁, 8시간 노동제를 노동자권리로 쟁취하기 위해서는 시위와 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1886년 5월2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체포돼서 교수형을 당한 미국 노동운동가 오거스트 스파이즈는 다음과 같이 최후진술했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방팔방에서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들불처럼 타오를 것이다.” 세계 노동운동사에 기록된 너무도 유명한 최후진술이다. 그런데 오거스트 스파이즈가 이 나라에 와서 본다면 자신의 최후진술에 다음과 같이 덧붙일지 모른다. “물론 곳에 따라서는 꺼지는 불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그렇게 덧붙여져서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감히 노동절을 기념할 수가 없다. 노동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다음과 같이 그런 오거스트 스파이즈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불꽃은 되살아 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8시간 노동제, 즉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 노동제를 쟁취해 나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절을 노동절로 기념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5월1일이 노동절이 아닌 다른 날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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