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무등지사)

올해로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지 20년이 된다. 1993년 2월 공인노무사 2차 시험을 볼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노동법이 곧 노동자의 권리구제라는 생각을 갖고 91년에 1차 시험을 봤으나 93년에는 노무사 대부분이 사용자를 대리한다는 것을 알고 노무사를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가 현재 모습이다. 노동자와 함께하는 노무사가 되자는 생각과 함께 어떤 이유에서든 노동자와 함께할 수 없다면 노무사를 그만하자는 생각 끝에 시험을 보게 됐다. 아직까지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노무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99년 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 2001년 대우캐리어사내하청노조, 2003년 기아자동차사내하청노조, 2004년 금호타이어사내하청노조 투쟁을 함께했다. 그 결과 1천여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노조의 김준규 동지나 현대차사내하청노조의 최병승 동지도 노무사를 하면서 알게 된 좋은 인연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 최병승 동지의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들고 자랑 삼아 내가 진행한 사건이라고 했더니 판결문에 내 이름이 있냐고 누가 물었다. 내 이름이 없다고 하니 "그럼 네가 한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무사의 서러움이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노동자를 위한 노무사가 되기로 한 결심이 잘 지켜지고 있고 다행이나마 좋은 결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과연 노무사를 계속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광역시립도서관에서 파견노동자가 인터넷에서 봤다면서 나를 찾아왔다. 4년이 넘도록 근무하고 있는데 광주광역시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이며 광주시에 직접고용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광주시는 이동도서관 운영에 관한 용역을 발주하면서 용역업체 요건을 근로자파견사업을 허가받은 업체로 제한했다. 이동도서관 운영에 관한 관리·감독 책임이 이동도서관장에게 있으며 파견법에 따른 근로자파견계약을 체결해 운영하고 있었다.

수차례 파견법 위반 진정 등을 진행한 경험에 비춰 볼 때 근로자파견이 명확했다. 진정과 함께 차별시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광주시는 근로자파견이 아닌 용역계약이라면서 용역업체에 근로자파견계약이 아닌 일반적인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용역업체는 광주시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근로계약서에 서명날인할 것을 요구하고 근로계약서 체결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파견을 인정하면서도 근로계약서 체결을 거부한 것이므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하고 2년이 경과했으므로 광주시에 직접고용의무가 있으므로 직접고용할 것을 지시했다. 광주시가 1년 기간제 근로계약에 서명할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됐다.

지금까지 파견법 위반에 따른 진정을 제기하면서 무기계약이 아닌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된 첫 번째 사례다. 그 당사자가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다.

이렇게 파견법을 위반해 4년 이상을 직접고용하지 않은 광주시를 노동부는 비정규직 개선 우수기관으로 선정했다. 선정이유는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파견법 위반에 대해서는 업무처리 부서가 다르다고 항변한다.

결국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무사가 파견노동자를 기간제 노동자로 만드는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기필코 무기계약직으로 만들고 말겠다. 기다려라,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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