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지 1년 반이 됐다. 전체 임기의 반환점을 돈 셈이다. "시민이 시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박원순 시장의 등장은 서울시정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토건'이나 '불통'의 이미지가 강했던 서울시가 '복지·소통'의 아이콘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노동정책도 바뀌었다. 노동보좌관을 두고, 노동정책과를 신설하면서 '노동 있는 행정'을 실현했다.

특히 정부 산하기관이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볼 수 없었던 과감한 비정규직 대책이 노동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정책으로 박 시장은 지난해 노동절에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무대에서 연설하는 첫 서울시장이 됐다.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그가 노동계와 진보진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박승흡 매일노동뉴스 회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박 시장을 만나 그의 정치철학과 노동정책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노동의 인간화' 철학에서 나온 비정규직 정규직화

한자리에 마주 앉은 박 시장과 박 회장. 양박(兩朴)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시장은 자매도시 20주년을 맞아 2박3일간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하고 전날 밤 서울에 돌아왔다. 박 회장은 10년 지기인 고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의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날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길이었다.

박승흡 : 비정규직 운동에 열성적으로 매진했던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마석에서 장례를 치르고 방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시장님 뵙기 위해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하고 왔습니다.

박원순 : 아, 그러셨어요. 저는 어젯밤 북경에서 돌아왔어요.

박승흡 : 바쁜 시장님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실례이니 <매일노동뉴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사회적 의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가장 먼저 대담 테이블에 올랐다. 박 시장이 취임 후 대표적으로 꺼내 든 카드는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노동절을 맞아 서울시 직접고용 비정규직 1천133명을 공무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연말에는 청소노동자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6천231명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정부에 앞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도한 것이다.

박승흡 :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시대적 화두이자 국민적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서울시장의 역할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상당히 높습니다. 노동 분야 정책공약 이행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박원순 : 제가 얘기하는 것보다는…. <매일노동뉴스>가 제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비판을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웃음). 기본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국한되기보다는 '노동의 인간화'라는 큰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노동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잖아요. 그동안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친밀하게 다가오지 못했는데 사실 저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철학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삶의 질이나 자아실현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성장중심주의나 개발에 올인하다 보니 잃어버린 가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비정규직도 그런 것 중 하나거든요. 현재 공식적으로 서울시 노동인구의 33%, 비공식적으로는 거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위해 피땀 흘린 건 아니지 않나 하는 거죠. 이런 부분들은 서울시민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라고 봅니다. 노동을 새롭게 봐야 한다는 관점에서 서울시에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과 노동보좌관·노동정책과를 만들었습니다.

박승흡 : 이전에는 그런 과가 없었죠?

박원순 : 옛날엔 노무팀이 있었습니다. 노동을 통제하는 관점에서만 본 거죠.

아무튼 그런 철학의 변화, 제도와 기구의 변화 속에서 이뤄진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서울시 본청과 산하기관은 확실히 하겠다는 겁니다. 현재 2단계까지 실천계획을 만들어서 실천하고 있는 중입니다. 7천여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겁니다.

박승흡 : 서울시 민간위탁 종사자들 중에도 비정규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노동정책은 전국 지자체의 모범으로 꼽힐 만큼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예컨대 120다산콜센터처럼 상시·지속 업무를 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서울시가 최근에 가장 고민하는 문제도 민간위탁 부문"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원순 : 서울시가 위탁한 사업이 직접 관리하는 것만 382개나 됩니다. 돈으로 따지면 1조원 규모예요. 민간위탁 부문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도 1만4천여명 정도 됩니다. 정말 거대한 부분이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사실 쉽지가 않아요.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하는 의미에서 3차 용역(민간위탁 고용개선 및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준 상황입니다. 결과물이 나오는 대로 어느 단계까지 우리가 할 수 있을지 봐야죠.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박승흡 :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와 '고용률 70% 달성'을 키워드로 경제발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경제란 개념 자체가 모호합니다. 고용률 70% 달성도 쉽지 않을 것 같고요. <매일노동뉴스>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경제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의 인간화 등 노동기본권의 향상과 발전이 뒷받침될 때 창조경제든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죠. 시장께서는 기술혁신보다는 사회혁신을 미래비전으로 제시하고 계신데, 노동 문제와 관련해 시장께서 말씀하시는 사회혁신의 요체와 미래비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고용안정에서 창조경제 나온다"

정기훈 기자
박원순 : 방금 하신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창조나 혁신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여유나 성찰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당장 내일모레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무슨 창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서울시는 시차출퇴근제·근무시간선택제·시간제근무·재택근무 같은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프리랜서 공무원제 같은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봐요. 말하자면 이런 거죠. '난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싶으니까 월급도 그만큼만 달라. 나머지 시간은 내 삶을 즐기며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옛날처럼 무조건 돈 많이 벌어서 집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른바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사람들 말이죠. '집까지 살 생각은 없고 원룸 정도면 충분하다. 그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분들은 프리랜서형 공무원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분들이 남는 시간에 그냥 집에서 잠만 자는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고민을 하고, 여러 경험을 한다면 자기가 맡은 일에서 엄청난 변화나 혁신·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공기관에서 프리랜서형 공무원제가 쉽진 않을 겁니다. 고민을 해 봐야죠.

박승흡 : 지금처럼 풀타임으로 밤낮없이 노동하는 사회에서는 창조와 혁신을 하기 어렵다고 보시는 거네요.

박원순 :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방금 말한 그런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요새 '스마트워크' 같은 흐름으로 가고 있어요. 안전행정부에서 지난해부터 곳곳에 일할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수원에 사는 분들은 수원시청이나 주변에 마련된 공간에 가서 일하라는 거죠. 구태여 서울시청까지 올 필요가 없다, 이 말입니다. 최근에는 동영상회의도 가능하니까 집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노동의 인간화라는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가능한 얘기죠.

박승흡 : 지금까지 민선 서울시장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상징코드가 하나씩 있습니다. 민선 1기 조순 시장은 '여의도 공원', 2기 고건 시장은 '지하철 노선건설계획', 3기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과 '버스 전용차로'. 4기 오세훈 시장은 '120다산콜'과 '무상급식 반대'(일동 웃음), '한강르네상스'가 트레이드 마크인데요. 공통점은 전부 토건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겁니다. 박 시장의 경우 취임 1호 결제가 무상급식이었던 만큼 '서울시 예산 30% 복지 투입'과 같은 '복지' 이미지가 강합니다.

박원순 : 사실 저는 무엇으로 기억되는 시장이냐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니까 굳이 정의해 본다면 아마도 '삶의 질 향상'이 상징코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선거 때 '내 삶을 바꾸는 최초의 시장'이란 구호를 내걸었는데요. 저는 이게 시대의 흐름과 연결돼 있다고 봐요. 제 철학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마주한 핵심 과제가 삶의 질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이나 인프라 확충, 도시안전을 위해서도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합니다. 개인이나 한 가족에게 책임을 지우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사회 양극화 현상이라든지, 사회안전·교육·주거·돌봄·의료 문제는 모두 삶의 질과 연관돼 있어요. 시민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상당한 부분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희들은 지방정부지만 공적영역에서 감당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쪽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죠.

박승흡 :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예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박원순 : 서울시도 예산이 여러 가지로 어렵긴 합니다. 경기둔화에 따라 세수도 감축해야 하고…. 제가 이어받은 채무가 20조원에 달하니까요. 그래도 이 부분은 서울시가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담보돼야 경제성장과 도시안전, 인프라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가자'고 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더 이상 가면 사람들이 지치고 병들고 여력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 하는데 지금이 그 단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승흡 : 공약사항 337건 중 47건이 폐기되거나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산이나 실효성 부족으로 공약이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원순 : 제가 시장을 처음해 봐서요(웃음). 공약을 무턱대고 한 게 조금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시장일을 한 번이라도 해 봤으면 조금 더 현실감 있게, 예산까지 충분히 반영해서 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공약을 축소·조정한 게 있습니다. 다만 시민들과 충분히 교감하면서 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승흡 : 현안에 대해 몇 가지 묻겠습니다. 진주의료원이 폐업위기에 놓여 있는데요. 시장께서는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해 공공의료 강화와 중앙정부 역할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박원순 :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피해를 입는 건 결국 진주시민들이에요. 이런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단 한 달간의 유예기간이 생겼으니 중앙정부와 경상남도·진주의료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민해 시민을 위한 최선의 결론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승흡 : 서울시에도 서울의료원을 비롯한 10여개의 공공병원이 있는데요. 최근 서울의료원이 서울시의 환자안심병원(보호자 없는 병원)을 추진하면서 간호사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적이 있는데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까.

박원순 : 건강을 추구하는 건 시민의 당연한 권리죠. 같은 맥락에서 시민 건강의 기초가 되는 공공의료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서울시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보건소를 확충한다든지, 시민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강주치의제를 실시하고, 서울의료원을 환자안심병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다만 환자안심병원이 생기면서 간호사들의 업무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 우려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나아진 것 같습니다. 환자안심병원으로 체계가 바뀌면서 현재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7명입니다. 예전에는 21명이나 됐어요. 예전에 비하면 3분의 1로 줄어든 겁니다. 올해 2월 전문가·노동단체·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환자안심병원 지원단을 구성해 환자 만족도와 의료진들의 노동강도까지 꼼꼼하게 점검하는 중입니다. 시민과 의료노동자들이 모두 건강한 병원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박승흡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좌초됐습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실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뒷수습은 현 시장이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어떤 수습책을 갖고 계십니까.

박원순 : 가장 시급한 건 사업 좌초로 인한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겁니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7년간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던 서부이촌동 주민과 그 일대 상인들을 위로할 방안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민간 주축으로 추진된 사업인 데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서울시 혼자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코레일과 민간출자사·중앙정부와 협의해 대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동안 개발이 제한되면서 낙후된 지역이 있고 통합개발이냐 분리개발이냐를 놓고 주민들끼리 갈등도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상당 부분 금이 간 만큼 도시재생 차원의 대책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승흡 : 정년연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재 서울특별시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서울모델협의회)가 서울시 투자기관의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는데요. 서울시는 지난해 말 서울메트로 단체교섭 당시 정년연장에 동의하지만 퇴직수당 폐지라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원순 : 서울시도 정년연장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노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생산인구 감소, 노령인구 대책이란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나오고 있는데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정년연장이 제시되고 있는 거죠. 다만 서울메트로 등 서울시 투자기관의 경우 매년 상당한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서울시 역시 채무 감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상황입니다. 정년연장을 통해 노동자와 우리 사회 모두가 윈윈하려면 이런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모델협의회에 실무소위원회를 구성해서 현실적인 시행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장이 인사할 수 있는 자리 얼마 안돼"

박승흡 : 정치영역에 관한 질문입니다. 민주개혁시민진보세력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됐는데, 그때 약속한 야당시민사회공동정책 합의가 어느 정도 이행이 되고 있습니까. 시민사회진영에서는 시장님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도 들리는데요.

박원순 : 그 당시 제가 참 행운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 뒤의 상황을 보면 말이죠. 그때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하나밖에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야권 전체가 단일대오가 되면서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희망시장운영위원회도 만들었고, 현재 이렇게 정치적 혼란이 오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잘 운영됐습니다. 예산이나 현실을 미처 감안하지 못하고 만들었던 일부 정책을 제외하고는 반값 등록금이나 친환경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후 여러 정치적 분열 과정에서 둔화된 측면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때 합의했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희망시정운영위도 운영되고 있으니 계속 노력해 나가야지요. 비판받을 게 있다면 따끔하게 비판받아서 시정할 건 시정해야죠.

박승흡 : 조금 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야권연대를 통해 당선이 됐다면, 선거 시기 시장님과 기본 철학을 공유하면서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정책역량을 뒷받침했던 인력을 등용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단 거죠. 그런데 주진우 정책특보 같은 몇 사람만 등용하고, 나머지는 한 명도 안 하셨단 말이죠. 이번 기회에 그 부분을 말씀해 주셔야 오해가 풀릴 거 같습니다(웃음).

박원순 : 제가 서울시에 들어와서 보니까 사람을 등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비서진이나 정무직 중 제가 인사할 수 있는 자리는 전체를 합쳐 봐야 10명 조금 넘습니다. 중앙정부와는 확연히 달라요. 서울시는 법령에 따라 요건이나 절차가 규정돼 있기 때문에 제한이 많습니다. 사실 저도 그 부분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시는 하나의 정부이지 않습니까. 외국으로 따지면 덴마크나 핀란드보다 더 큰 기구인데도 제가 모시고 와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숫자가 너무 제한돼 있는 겁니다. 게다가 10여명 되는 인원으로도 서울시의회에서 굉장한 공박을 당했습니다. 적어도 서울시의 광대한 정책을 논의하려면 외부에서 올 수 있는 분들이 조금 더 많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 민주통합당 당원이 됐는데요. 민주통합당도 저에게 불만이 있을 겁니다.

박승흡 : 온 천지가 불만인 거죠(웃음).

박원순 : 저도 불만이에요(웃음).

박승흡 : 시장님이 인사권을 행사해서 앉힐 수 있는 자리가 10여석밖에 없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박원순 : 생각보다는 적어요. 정무직 외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제가 또 마음대로 인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임시장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과거에는 당 선거에서 떨어지면 (서울시에) 와 있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그 부분은 객관적으로 인사위원회에서 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 넣어라, 저런 사람 넣어라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박승흡 : 다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는데요. 바람직한 야권연대는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박원순 : 어떤 경우에도 통합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통합만 하는 게 아니라 정책이나 비전이 함께 가야 한다고 봅니다. 보통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잖아요. 정책에 있어 사실 작게 보면 모두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통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정책연대를 할 때는 이념적 지형보단 그것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합리적인가에 따라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따지고 보면 과거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것을 10년 조금 넘는 사이에 민주당을 거쳐 새누리당이 다 가져갔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책이란 게 무슨 큰 이념의 차이가 있겠냐는 겁니다. 조금은 큰 폭을 가지고 정책이나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승흡 : 오늘(24일)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하는 날인데요. 시장께서는 최근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철학을 수용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박원순 : 사실 저도 다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습니다. 저도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보듬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해결하기 위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주고 있잖아요.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당하다는 겁니다. 그러한 목소리에 정당들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죠. 안철수 원장에게 모아지는 기대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저 또한 그런 국민적 요구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하는 겁니다. 다만 이 분(안철수)이 당선된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잘 모릅니다. 앞으로 함께 논의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박승흡 : 시장님의 정치철학은 무엇입니까.

박원순 : 우선 생활정치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걸 통해 미래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로 중요한 게 바로 현장중시입니다. 현장에 답이 있는 거죠. 세 번째로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매일 현장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소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박승흡 :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선거기간에는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선거만 끝나면 현장에 잘 안 가고 소통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박원순 : 저 같은 경우 혼신의 힘을 다해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십 개의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하다 못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시민발언대나 명예시장·일일시장 제도를 만들었고, 온라인으로 소셜미디어 센터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합니다. 지금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시도하지 않았을 정도로 투명한 정보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문서를 신청하면 내주는 것을 넘어 프라이버시나 안전에 위배되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시민이 시장'이라는 말을 가능하면 관철하려고 하는 거죠. 그동안 서울시에 많은 쟁점과 온갖 분란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조용해진 상태입니다.

"경평전 복원·서울시향 오케스트라 평양공연 제안은 유효" 

정기훈 기자

박승흡 : 최근 한반도 전쟁위기의 상황에 대해 1천만 서울시 행정수장으로서 많은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프로세스에 대해 어떤 입장이십니까.

박원순 : 서울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시장의 입장으로서 지금 굉장한 위기상황인 거죠. '서울 디스카운트'도 분명히 있구요. 문제는 서울시장이란 직책이 엄중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겁니다. 외교권이나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힘과 권력은 100% 중앙정부에 있기에 제가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취임 전부터 말씀드렸던 것인데요. 우선 중앙정부의 협력을 얻어 비정치적인 분야인 경평전(서울과 평양 사이의 남북축구대회)을 복원하자는 것과 서울시향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을 하자는 제안은 유효하다는 겁니다. 지난 정부 때도 노력은 했지만 워낙 남북관계가 얼어 있다 보니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만에 하나 어떤 불행한 사태가 났을 때 서울시민의 안전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방위협의회 회장이거든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분위기가 상당히 안좋았을 당시 서울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시뮬레이션을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수도방위사령부라든지 경찰청과 협력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서울시도 늘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승흡 : 노동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노동절을 앞두고 노동계에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박원순 : 예전에 서울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한 직원이 '직장생활하고 처음으로 적금을 붓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얘기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자기의 미래에 대해 어떤 준비나 계획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에 가치를 느끼고 행복한 사회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아닙니까.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의 그늘을 지워 가고, 노동자들이 설 자리를 넓히고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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