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경제민주화
2030연대 대표

요즘 드라마를 꽤 보고 있다. 특히 케이블TV나 종편에서 자체 제작한 드라마들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소재의 참신함 등에 있어서는 지상파 방송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예능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TV를 보고 있다 보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역할을 하는 방송작가, 드라마 작가들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얼마 전 인터넷에 회당 몇천만원을 받는다는 드라마작가들이나, 월 1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는 방송작가들의 이야기가 떠돈 적이 있는데 그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절대다수의 다른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방송·드라마 작가가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드라마작가 학원·방송작가 학원으로 몰려간다. 어떤 직업이 인기가 있으면 곧 그와 관련한 사교육 학원이 성행하는 것은 참 한국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전문직에 해당하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그 직업에서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성장통’이 ‘불치병’이 되는 일들이다.

일전에 한 젊은 방송작가에게 물었다. 바쁘게 돌아가고 특히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방송계에서 방송작가들과 가장 갈등을 빚는 상대는 누구인가 물었다. 나는 당연히 본사에 소속돼 있는 담당프로그램의 PD를 예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의외였다. "작가의 적은 작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드라마나 방송프로그램 모두 작가 혼자서 모두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인작가가 있고 보조작가가 적게는 수명에서 수십명이 달라붙기도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많은 노동문제는 방송사-외주업체, 메인작가-보조작가의 구조에서 일어난다. 실제 일을 할 때에도 다수의 젊은 보조작가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상대는 당연히 메인작가인 경우가 많다.

방송계에 정착해 수많은 경험을 쌓은 메인작가들은 사실상의 ‘고용인’과 ‘실전 선생님’의 역할을 함께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보조작가는 어떤 메인작가를 만나는가에 따라 고용조건이나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좋은 선배작가를 만나면 좋은 노동환경에서 ‘잘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고 나쁜(?) 선배작가를 만나면 나쁜 노동환경에서 ‘더 잘 배운(?)’ 소수가 되거나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다수가 되거나 하는 이상한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은 해당 직업에 정착하는 ‘성장통’에 해당하는데 제법 강도가 세다고 한다.

어디서나 누군가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배우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통은 향후에 튼튼한 기초와 경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장통을 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최저임금도 되지 못하는 노동조건이나 명확하지 못한 고용관계에서 파생하는 각종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방송국 본사의 무책임과 외주업체들의 장난질로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임금체불과 만성적인 경제적 불안은 온전히 젊은 작가들 개인의 문제가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사실 메인작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있다. 때문에 저임금에 상습적인 임금체불 등이 발생하는 상황이 구조적인 곳에서의 젊은 작가들의 성장통은 ‘불치병’으로 전이된다. 이렇게 불치병 수준으로 전이된 그 젊은이들은 다른 직업을 준비하기에 늦어 버렸거나 깊은 상처를 안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구조적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다. 당장에 노사관계 영역 또는 고용과 피고용의 관점으로는 복잡한 해당 산업이나 직군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할 때도 있다. 오히려 다수의 젊은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방송사 본사의 책임 있는 자세와 외주업체들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도 꿈을 향해 열정을 품고 달려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성장통에 시달리고 있다. 30대 중반에 다다른 필자는 사실 성장통을 인정하는 세대가 돼 가고 있다. 성장통은 겪어도 되는 일이다. 어쩌면 피해 갈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성장통이 불치병으로 전이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과 사회가 고장 나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 (haruka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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