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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회장의 위험한 승부수
한라그룹은 지난 97년 차입경영과 상호지급보증의 여파로 공중분해됐다. 잘 나가던 자동차 부품기업인 만도기계는 모그룹의 지시에 따라 지급보증을 서는 바람에 최종 부도처리 됐다. 한라그룹은 98년 미국계 사모펀드 로스차일드(Rothschild Fund)의 컨설팅에 따라 소그룹으로 재편됐다. 한라그룹엔 한라건설·한라콘크리트·한라I&C만 남았다. 만도기계는 (주)만도로 재편돼 99년 말 미국 JP모건 계열사인 선세이지에 팔렸다. 그러던 한라그룹은 10년 만에 핵심 계열사였던 만도의 경영권을 되찾았다. 옛 한라그룹의 영화를 되찾는데 선봉장 역할을 한 것은 한라건설이었다. 한라그룹컨소시엄은 지난 2008년 만도의 대주주인 선세이지측과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라그룹과 KCC, 산업은행 사모펀드, 국민연금 사모펀드는 약 9천억원대 매각대금을 지불했다. 이 가운데 한라건설은 1천593억원을 투자해 지분 17.7%를 사들였다. 정몽원 회장의 보유지분(8.93%)을 포함하면 한라그룹의 만도 지분은 35.6%다.

지분 매각을 통해 선세이지가 얻은 매매차익은 7천743억원에 달한다. 선세이지는 1천890억원을 투자해 8년 만에 4배에 가까운 이윤을 얻었다. 사실상 외국투기자본은 돈잔치를 벌였고, 부도를 낸 정몽원 회장은 경영권을 되찾는 모양새였다. 이 과정에서 외국투기자본과 경영진만 웃었을 뿐 국민과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흑자부도 사태에 직면한 한라그룹에 부채(6조1천890억원)의 61%에 해당하는 3조6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만도기계 노동자 2천500여명은 부도처리 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런 한라그룹의 악몽이 되풀이될 조짐이다. 그룹의 모태인 한라건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건설업 시공능력평가를 보면 한라건설은 국내 건설사 가운데 12위에 해당한다. 한라건설의 지난해 기업실적은 건설경기 침체의 직격타를 받아 처참할 정도다. 2011년 대비 지난해 매출액은 11.1% 오른 1조8천735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당기순손실은 2천259억3천만원, 영업손실도 2천190억원에 달한다. 적자의 늪에 빠진 한라건설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과 계열사인 마이스터였다. 한라그룹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정 회장은 80만여주(50억원), 마이스터는 1천17만여주(3천386억원)를 배당받았다. 이를 통해 마이스터는 한라건설의 지분 36.27%를 확보했다. 마이스터는 (주)만도가 100% 투자한 비상장 회사다. 정몽원 회장은 (주)만도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겪는 한라건설도 구하고,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도 완성하는 이득을 얻은 셈이다. 한라건설→(주)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강화되는 것이다. 정 회장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는’ 등식을 실현한 셈이다. 문제는 한라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느냐다.

정 회장의 이런 지원에도 한라건설에 대한 시장 반응은 차갑다. 한라건설의 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있다. 한라그룹의 우량 계열사인 (주)만도의 주가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한라건설 우회지원에 대한 주주들의 부정적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라건설엔 악재가 거듭되고 있다. 한라건설은 25일 2013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원청업체인 한라건설이 책임졌던 사업장에서 무려 14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울산 앞바다에서 작업선 석정 36호가 침몰해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사업장의 원청업체는 한라건설이었다. 울산지법은 같은 날 업무상 과실선박매몰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해양환경관리법위반죄 등으로 기소된 원청업체 한라건설과 하청업체 석정건설 임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울산항만청이 기상악화로 2차례 피항을 권유했음에도 작업을 강행해 석정 36호가 침몰한 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안전한 사업장 만든다’는 경영방침을 내걸은 한라건설의 두 얼굴이 드러난 셈이다.

정몽원 회장은 한라건설과 (주)만도의 최대주주이자 두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87년 당시 정몽원 회장은 흑자기업이던 만도기계에게 부실 계열사의 지급보증을 강요했다. 결국 만도기계는 부도처리됐고, 그룹은 쪼깨졌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만도기계도 되찾았다. 그런데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이 이번에는 순환출자로만 바뀌었을 뿐 정 회장의 경영행태는 달라진 게 없다. 한라건설의 유상증자는 ‘신규 상호출자를 금지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과도 상충될 뿐만 아니라 관련법 위반 소지도 다분하다. 그렇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흑자부도 사태의 악몽이 되풀이 돼선 안 된다. 소액주주와 노동자만 희생될 수 없지 않는가.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직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자사주 매입 캠페인을 벌이는 정 회장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이번 한라건설 유상증자와 관련해 관련법 위반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또 (주)만도의 지분 7.90%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2대 주주로서 정몽원 회장과 경영진의 무리한 계열사 지원에 대해 급제동을 걸어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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