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한라건설이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양대 노총·매일노동뉴스·노동건강연대·진보정의당·민주통합당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4월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25일 이 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해 한라건설의 무리한 비용절감으로 노동자 14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공동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산재사망은 살인이다”를 모토로 산재사망을 막기 위해 애를 써 왔다. 하지만 현실은 거의 나아진 것이 없다. 기업의 자율점검에 맡겨 봤자 소용이 없음이 판명 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기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공동캠페인단은 지난 8년간 꾸준히 이른바 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해 왔다. 이미 호주·영국·캐나다에선 기업살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도 기업살인법이 발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이 지난 24일 주최한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 책임강화 법 개정방안 토론회’에서 기업살인법의 다른 이름 ‘(가)산업재해범죄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공개됐다.

“산재사망도 살인이다”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안고 시작한 공동캠페인이 8년을 맞았다. 이제는 기업살인법이 제정돼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과태료 무겁게 부과해 사업주 가중처벌해야"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
본부국장

산재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업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기업살인특별법을 만들어 산재사망 사고를 일으킨 사업주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체계상 기업살인특별법 제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별법 제정으로 사업주를 처벌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서라도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재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예방 가능한 사고다.

사고의 원인이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과실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이 맞다. 책임을 가중하는 방법으로 벌금을 더 무겁게 할 것이냐, 과태료를 더 높게 책정할 것이냐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벌금의 경우 상한선을 현행보다 높인다고 해도 검찰과 법원을 거치면서 엄한 처벌이 이뤄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행정처분인 과태료를 무겁게 부과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또한 산재사망 사고의 경우 사업주를 구속해서 책임을 묻는 게 맞다. 지금처럼 고용노동부가 구속품신을 해도 검찰과 법원에서 불구속 기소되거나 집행유예 처분에 그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원청의 책임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원청 사업장 내에서 일어나는 산재사고는 근본적으로 하청기업의 안전보건 조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청의 책임으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근로관계를 맺은 사업주의 책임으로 둔다면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할 수 없다.

국내기업 해외에서는 산재사망시 90억원 벌금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산재사망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기에,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에 의한 범죄행위”라는 것이 기업살인법 제정의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 이미 2003년 호주 준주(수도 캔버라가 있는 주)와 캐나다에서 기업살인법을 제정했고, 2007년 영국에서도 제정됐다. 노동자의 산재사망이 영국에서는 약 7억원에 달하는 벌금형에 달할 정도의 범죄행위가 된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50만원 벌금형으로 교통사고 범칙금 내듯이 취급받아야 하는 것인가. 95년 미국의 괌 국제공항 공사현장에서 1명의 건설노동자 사망에 시공사인 삼성중공업은 92억원의 벌금을 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 국내에 들어와 노동자 산재사망에 내는 벌금은 몇백만원 수준이고, 하청노동자 사망에는 십중팔구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노동자만 위하는 문제가 아니다. 2011년에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이 18조원을 넘었다. 매년 연봉 2천만원의 노동자 85만명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 산재사고로 날아간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처럼 지역 전체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지역 주민의 생명권·재산권이 위협 받기도 한다. 결국 기업이 자기 이윤을 위해 안전을 등한시하는 문제는 노동자를 죽이고 국민을 위협하며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누수효과를 발생시킨다. 이제 기업살인법 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기업살인법 제정시 법체계 혼란 우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팀장

최근 노동계는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산업안전법 산업안전보건법 벌칙규정이 미미하고 법원의 양형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살인법 제정 등 사업주 처벌강화를 위한 입법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산안법의 처벌 규정(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형량이 강화돼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같이 이미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안법이 행정형법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며, 법체계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할 우려만 크다. 특별법 제정의 근거로 영국의 입법례 등이 인용되고 있으나, 영국의 입법례는 사업주만을 한정하고 있지 않으며 처벌강화를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한편 법원의 양형수준이 낮다는 주장이 있으나, 양형수준은 법관이 산안법 위반의 양태·산재예방 노력 정도·위반회수·법률규정의 명확성 등을 종합해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지, 적정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해·위험업무 외주 사업장, 안전사고시 원청기업 처벌 강화”

박종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
정책국장

산업안전 분야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법적 의미의 비정규직 외에 도급업체 노동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산업재해율은 통계적으로 줄고 있지만 사망만인율은 선진국보다 3배 이상 높다. 사망만인율이 낮아지려면 중대재해가 줄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잇단 화학물질 사고의 경우 이른바 3D(더럽고·힘들고·위험한) 업종에서 주로 발생했다. 이런 업무는 원청 대기업이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도급업체에 하청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의 ‘기업살인법’ 제정 움직임도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도 원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지금은 원청 기업이 유해·위험업무를 도급업체에 맡겨버리면 그만인데, 앞으로는 산업안전관리에 있어 원청 기업의 관리책임이 강화된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 기업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이밖에 원청 기업이 유해·위험업무를 하도급으로 줄 때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인가 기준도 강화된다. 이를 통해 유해·위험업무가 외주화되는 범위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산업재해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영세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확대된다. 사업장 스스로 산업안전 예방활동을 강화할 경우 산재보험료를 인하해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각종 금융서비스와 지원금도 확대된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국회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재는 범죄라는 인식 확대돼야"

매해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산재 은폐·무마로 노출이 안 되는 사망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해·사망사례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산재 예방이 기업의 자율점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정부의 예방행정 기능이 부족한 면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관은 300여명에 그친다. 법원과 검찰이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산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사업주는 2명이 넘질 않는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대해 당연히 투자해야 함에도 이에 대한 투자를 소멸되는 비용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산재가 발발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늘려 이들에게 업무를 맡기고 있다. 최근 중대재해에서 하청노동자의 피해가 유달리 많은 이유다.

산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재가 범죄라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 재수 없어서 사고가 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 과실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산업안전보건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산재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게 많은 책임을 묻는 (가)산업재해 범죄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준비 중이다. 이 법을 통해 산재에 대한 인식전환 필요성이 활발히 논의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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