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1.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제기하자 재벌들이 조직적 반대와 저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도 대기업들의 압력이 거센 것으로 전해진다. 정년 60세의 단계적 의무화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세대간 상생위원회가 1년이나 논의했던 정년 60세 의무화에 기를 쓰고 반대하던 경영계는 여전히 임금체계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이야기하면서 임금피크제 등 임금 깎을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에 찬성한다면서도 구체적인 투자계획이나 투자규모는 밝히지 않은 채,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에 효과가 있는 대체휴일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당장 대체휴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2015년부터 효과가 나타나는 것임에도 경영계는 32조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며 딴죽을 걸고 있다. 국정과제로 설정된 대체휴일제, 관광연구원은 수조원의 내수 창출효과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11만명의 고용창출과 내수진작에 도움 된다고 하면서도 재벌 눈치보기와 여권 내 갈등과 기싸움으로 물 건너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 중앙정부의 경제부처 고위공직에서 물러나 경제단체의 부회장으로 있는 분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요지는 기획재정부가 개입해서 제대로 된 공기업을 본적이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데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이제는 요소투입 중심, 양적 성장 중심에서 질적 발전으로 나아가야 된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많이 쉬어야 하고, 그럴 때 창의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각각 통과한 정년 60세 의무화와 대체휴일제에 대한 경영계의 반대와 백년하청의 반대논리를 보면서 이것을 새 정부가 설득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창조경제도 경제민주화와 노동기본권 보장도, 노사정 대타협도 모두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우리 기업의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며, 그간 우리 기업의 행태에 대해 정리해 본다.

#2. 사회대통합을 위해서는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및 현대자동차 등의 노동 및 노사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대기업 총수가 불법행위로 법정 구속되는가 하면, 삼성전자의 불산누출 사고, 백혈병 노동자 사망 사건, 노동자 사찰과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따른 이마트에 대한 사법당국의 압수수색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때는 대기업 집단인 전경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헌장 제정을 들고 나오곤 한다. 때만 되면 들고 나오는 알맹이 없는 일회성 정치적 이벤트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즉, 윤리헌장 제정이 정권 교체기 재벌 총수의 법정 구속과 대기업 압수수색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재벌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국민 여론이라는 소나기를 피해 나가려는 꼼수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실종되고 재벌의 목소리는 다시 커지고 있다.

#3. 대기업에 대한 국민일반의 시각은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발언이 압권이다. 그는 2011년 7월 한나라당 대표시절 모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대기업 하면, 착취가 연상된다", "대기업이 100조원가량을 은행에 잠가놓고 중소기업·자영업자·서민들에게 안 내려 보낸다는데 그런 기업에 추가 감세를 계속 해준다는 건 맞지 않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진입 제한이 과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두부와 콩나물 시장까지도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옳지 않다", "대기업의 편법상속이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외국은 이렇다. "자식이 똑똑하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잘 될 것이고, 똑똑하지 못하면 재산을 물려줘도 다 털어먹을 것이므로 자식에게 돈을 물려 줄 필요가 없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홍콩의 영화배우 성룡)

빌 게이츠는 해마다 수조원씩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재정지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자, "나처럼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물려라, 세금 더 내도 아무 문제없다, 그런 방법으로 재정을 튼튼하게 해서 경제를 살리자"고 했다. 부시 행정부가 상속세 폐지를 들고 나왔을 때, 상속세를 폐지하지 말라고 주장한 빌 게이츠 시니어, ‘재정건전성을 바라는 애국적 백만장자모임’등을 통해 꾸준히 증세를 요구했던 씨엔엔(CNN) 창업자 테드 터너,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등 미국 기업인의 행태를 보면서 큰 부자의 큰 그림을 본다. 지난 3월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CEO에게 거액 연봉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국민의 지지율은 70%에 달했다.

#4. 나라님도 단두대로 보내는 나라, 프랑스의 정리해고는 엄격한데, 나름 홍역의 산물이다. 화염병과 가두시위, 경영진 납치 등은 아이들 장난이었다. 2000년에는 정리해고 당한 프랑스의 셀라텍스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달라며 맹독성 황산 5천리터를 뫼즈강에 쏟아 부어 버렸다. 프랑스는 물론 이 강이 관통하는 네덜란드·벨기에까지 덜덜 떨었다. 재미를 본 프랑스 운송노조도 세느강에 독극물 살포를 위협했다. 이후 프랑스 노사관계의 중심축은 임금협상에서 정리해고로 옮아갔다. 이런 일그러진 '양극화'를 바로잡지 않으면 한강도 언제 프랑스 뫼즈강처럼 독극물의 비극을 맞을지 모른다(2013년 1월7일자 중앙일보). 감원에 반대하는 보스내핑(bossnapping)-상사(boss)와 납치(kidnapping)를 합성한 신조어-로 에 관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장난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양반이다.

#5.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관련해 2011년 6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발언을 보자. “나는 기본적으로 친기업적 시각을 가진 정치인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미친 대기업의 역할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노조의 불법파업, 폭력적 방법이나 행위에 대해 한 번도 눈 감거나 동조해준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노조는 선거 때마다 저와 반대편에 섰다. 심지어 낙선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측은 일방적 해고를 시작했고 심지어 생활공간인 사원아파트까지 비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비정한 기업의 모습을 보여줬다. 노조도 이에 맞서 크레인 점거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사측에서 해고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수주물량 미확보가 노동자의 탓인지, 사주의 경영책임인지 수사를 통해 따져야 한다. 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사주는 보호되고 노동자만 집단해고 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것이 사회 정의인지 되묻고 싶다. 기업 이윤이 경영 노하우나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확보되지 않았고, 힘없는 협력업체나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 등의 방법으로 메웠다.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더욱 불쌍한 이 땅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눈물로 지새우고 결국 실직의 비운을 맞게 된다. 노동위원회에 제소된 부당노동행위가 단 한 건도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해 자료부족 핑계를 하기엔 이 땅의 공직자들이 낯 뜨거움을 느껴야 한다. 그 판결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횡포가 그만큼 더 조직적이고 법이 그들에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측은 사기업에 국회가 왜 간섭하느냐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한진중공업은 사주 개인의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와 임직원, 그리고 우리 국민이 함께 키운 우리 모두의 기업이다. 노조의 과격, 불법, 집단시위, 불법활동 등을 두둔하지 않지만 법의 잣대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적용돼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하지 않는다면 비난 받아야 하고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면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 사주의 경영부실과 무책임을 오롯이 노동자에게만 짐 지우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단 한 건의 물량도 확보하지 못한 경영주가 책임을 지지 않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국회의원 노조’ 위원장의 발언 같다.

이제 기업도 바뀌어야 한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많은 중소영세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온 국민의 지원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 오늘에 이른 대기업이 앞장서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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