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국민은행지부

“요즘에는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이제라도 사퇴하면 직원들도 ‘수고 많이 했다’고 위로해 줄 텐데요. 과욕을 부리는 거죠. 스스로 장관급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 정도 얘기가 나왔으면 상황판단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3년 동안 상처만 주고 가겠다는 건지….”

측은지심. 박병권(45·사진)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이 요새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을 정의한 말이다. 박병권 위원장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어윤대 회장에 대한 리더십 평가 결과가 5점 만점에 2.47점으로 자격미달 수준이라고 밝히며 단호한 어조로 사퇴를 촉구했다. 어 회장의 임기는 올해 7월까지다.

“어윤대 회장 측은지심 느껴질 정도”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어 회장의 연임과 관련한 KB국민은행 직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는데, 연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16.9%에 불과했다. MB측근 금융권 낙하산으로 ‘4대 천왕’ 중 하나로 불리던 어 회장이 금융당국의 사퇴 압력에, 직원들로부터 배척되고 있는 모양새니 그의 말대로 측은함이 느껴질 만하다.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 위원장은 어 회장의 리더십을 ‘불통’, ‘독선’으로 규정했다. 그의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수용성이 약해요. 4대 천왕이 대부분 스스로 물러났는데도 어 회장이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모습을 봐 왔던 직원들의 마음이 이번 평가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봅니다.”

그의 말에는 어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KB금융그룹에 대해 “비만증 환자”라고 표현하며 3천명 넘는 인원을 구조조정한 것에 대한 분노도 담겨 있었다. 박 위원장은 “경영진은 비만증 환자라며 체질개선이 덜 됐다고 하는데 직원들은 점심시간도 갖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형화된 평가를 받고,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고, 고객평가 때문에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징계를 당하고 하면서 조합원들의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와 있다”고 우려했다. 인원부족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박 위원장이 보여 준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배구조 개편 2라운드 돌입

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리더십 부재를 그는 구조적인 문제로 봤다. 경영진이나 정치권에 종속적이고 비도덕적인 사외이사들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회장 추천권한을 행사하고, 다시 회장이나 정치권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가 자리를 꿰차는 악순환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주회사 회장이 자회사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악순환이 전염된다고 봤다.

“정권의 최측근이 최고경영자(CEO)로 오고, 아래 자리는 그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으로 채워집니다. 사외이사는 일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공과를 나눠 먹는 자리가 돼 버렸어요.”

지부가 찾은 악순환의 약한 고리는 바로 지배구조 개편이었다. 지부가 18일 ‘KB금융지주 지배구조개선 검토보고서’를 발간하고, 국회와 이사회에 이를 전달하면서 여론몰이를 하는 이유다. 지부는 보고서를 통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대표이사를 배제하고 주주와 직원·고객이 참여하는 ‘사외이사후보 인선자문단’ 설치를 요구했다. 윤리성·전문성·독립성을 평가지표로 하는 ‘사외이사 적격성 평가기준’도 제시했다. 현재 사외이사 9명 중 5명이 이 평가 결과 ‘부적격’이라는 놀라운 결과도 내놓았다. 이들 사외이사 9명만으로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조의 '악순환 주장'이 이해가 간다. 지부는 회장후보추천위를 직원과 주주·고객·사외이사가 참여하는 ‘회장후보 인선자문단’으로 개편하자는 요구도 함께 제출했다.

지부는 지난해 초에도 KB금융지주 지분의 0.91%를 갖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사외이사 추천권을 행사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주주제안 방식으로 집중투표제를 시도한 것은 금융권에서는 처음이었다.

지부는 올해 다시 주주제안을 시도할 계획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2라운드의 막이 오른 것이다.

“큰 싸움이지만 불가능한 싸움은 아닙니다. 국회나 금융위원회에서도 고쳐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고요. 이번에 안 되더라도 인내하고 연대하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박 위원장의 말대로 금융위는 19일 신제윤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1차 TF회의를 열었다. 지부의 지배구조 개편 2라운드는 그래서 1라운드와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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