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찮다. 일본 자민당이 독도를 포함한 영토 문제와 평화헌법 개정 문제를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19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공약검토위원회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와 쿠릴 열도 4개 섬과 함께 독도 문제를 공약에 포함시키고, 평화헌법의 근간 조항인 9조를 개정해 자위대를 일반 군대(국방군)로 대체한다는 구상을 발표했다고 한다.

독도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유권 주장을 계속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로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위대 대체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 가세한 동북아시아 무력 긴장이 우리에게 자못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남북 간 긴장이 심화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갈등으로 인해 더욱 요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경화된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로 인해 우리나라가 강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도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다. 따라서 국군을 양성하고 자신의 영토를 수호하는 것은 고유한 의무이자 권리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와 의무는 침략전쟁을 방어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것을 목표로 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최근의 행태로 볼 때 일본의 우경화는 정당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이 정당한 권리들은 침략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같은 전범 국가인 독일과는 사뭇 다르다. 독일에서 신임 수상의 취임일정은 유태인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나치즘의 과거사에 대해 철저히 비판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그런데 일본은 어떠한가. 수상이 신사참배를 통해 침략사를 영광으로 상징하고, 학교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통해 군국주의를 미화시킨다.

대개 급속하거나 극단적인 우경화는 자국이 위기에 처하거나 외국의 강압에 반발할 때 생겨나는 현상 중 하나다. 최근 일본의 경제악화가 한 요인이 될 수 있고, 세계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된 경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이후 단순히 경제가 어려워질 때는 노동시장 갈등으로 현상하는 우익 포퓰리즘이 등장할지언정 외국에 대한 침략적 시도로까지 연결되기는 어렵다. 또한 외국의 강압에 의한 경제 위기나 기타 피해 경험은 상대국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미국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대한 위협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 경험이 부재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헌법을 가진 바이마르 공화국을 경험했다. 따라서 독일 국민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킨 나치즘 정권의 폭정을 성찰할 수 있는 민주시민 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군국주의 이전에 민주주의 경험이 전무했다. 오로지 황국신민의 의무가 강조되는 제국신민 의식만이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고 일본인들은 제국에 충성한 신민으로서 ‘분(忿)’할 뿐이었을 게다.

일본은 침략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국력 강화를 위해 우경화를 노정하거나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경험의 부재로 인해 역사적 성찰 능력이 결여됨으로써 자신들이 잘못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되지 않는다면, 과거 아시아의 불행한 역사는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전후 일본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도 스스로 새로운 성찰의식을 키워 가고 있다. 일본이 불행한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고 평화와 민주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은 민주시민들이 가진 신성한 의무다. 새로운 일본은 새로운 일본 국민들 스스로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로부터 용서받는 것도 이들의 노력이 현실화될 때 가능하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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