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언론은 미국 보스턴 테러사건에서 누가 죽고 다쳤는지, 어떤 이유로 테러가 일어났는지 실시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대한민국 울산에서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 은폐를 위해 고용한 촉탁계약 해고노동자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이틀 후 광주 기아차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가 “내 자식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분신을 시도했다. 도대체 현대차와 기아차 비정규 노동자가 왜 죽고 분신을 해야 했을까.

현대차는 지난해 6월 사내하청 근속 2년 이하인 1천500여명을 촉탁계약직(기간제)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촉탁계약직의 경우 “불법파견 사업장인 현대차에서 하루만 일해도 정규직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개정 파견법 시행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며, 단기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을 양산해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아무런 저항이 없자 현대차는 그해 7월부터 “2년 동안 재계약이 가능하며 처우도 향상된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촉탁계약직을 고용했다. 하지만 사내하청업체 경력이 많은 노동자들은 금방 해고통보를 문자메시지로 받아야 했다. 사내하청(불법파견)과 촉탁계약(기간제) 기간을 합한 근속이 2년을 넘어가면 정규직 고용의무가 생기니, 현대차가 이를 회피하려고 해고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고등법원과 노동위원회는 고용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파견과 기간제, 또는 기간제와 산하기관을 번갈아 고용된 경기대와 서울 소재 한 대학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금도 현대차는 촉탁계약직 노동자의 연속근로기간이 사내하청과 합쳐 2년이 넘어가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 해고는 문자로 통지한다. 해고통지를 문자로 받은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분노해 작업 도중 퇴근하는 바람에 라인이 선 일도 있다. 다른 촉탁계약직 노동자의 동요를 막기 위해 현대차 관리자가 현장에 내려와 감시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감시가 필요했을까. 이달 10일에는 울산 1공장에서 현장 감시통제 수단으로 설치한 CCTV 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불법파견 증거은폐가 명확한 촉탁계약직 사용을 계속 방치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가 감시를 받을 것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일회용품으로 전락한 삶을 비관할 것이다. 이는 현대차가 자행하는 간접테러를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불법파견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교섭’에 합의했다. 다섯 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현대차와 기아차는 작업배치가 다르기 때문에 불법파견이 아니라며 어떠한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이 시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으로 고통을 받았고, 생산성이 15% 이상 향상된 주간연속 2교대로 더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광주 2공장 앞에서 천막을 치고 투쟁하며 희망을 이어 갔다. “자동차 생산공정에선 도급이 불가능하다”(한국지엠),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인 자동차 생산공정은 불법파견”(현대차)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비춰 보면 기아차 사내하청은 당연히 불법파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측은 불법파견을 철저하게 부정하며 교섭마저 중단하더니 ‘신규채용시 정규직 장기근속 자녀 우선채용’에 합의했다. 정규직은 대를 이어 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살 것을 강요한 이 합의에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절망했고 분노했다.

기아차가 불법파견 문제를 인정하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대책을 마련했다면 노동자의 분신은 없었을 것이기에, 이것은 명백히 기아차의 ‘간접테러’다.

불법파견으로 벌어진 현대·기아차의 간접테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한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면서 한 노동자를 분신으로, 류기혁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2010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법파견을 부정하면서 판결이행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탄압하자 비정규직인 황인화 조합원이 분신했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집단해고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탄압은 2012년 또다시 울산공장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죽음의 행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기아차 사내하청 해고자 윤주형 동지가 삶을 등진 데 이어 현대차 촉탁계약 해고자가 죽었으며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분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테러는 보스턴 사태처럼 살상무기를 이용한 직접테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계조작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가족 24명이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사태는 간접테러 행위다. 불법파견을 하고도 정규직 전환을 거부해 3명을 분신으로, 4명을 죽음으로 내몬 현대·기아차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면 그 방식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동일하게 비판하고 반대해야 한다.

현대·기아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간접테러에 대해 모든 노동자·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분노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내하도급 폐지,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 전환”을 함께 외치며 투쟁할 것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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