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일촉즉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에 이은 미사일 위협에다 최근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전쟁기운마저 느껴진다. 남한은 한미동맹 강화와 군사훈련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의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등 국면 전환을 위한 노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매일노동뉴스>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하는 노동·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연속기고로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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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미국의 핵 관련 역사에는 MAD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 뜻대로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인데, 풀자면 "Mutual Assurance of Destruction"이다. 즉 "파멸을 서로 보증하는 일"이라는 영어의 압축이다. 핵을 가지고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할 수 있다고 믿고, 그쪽으로 서로 치달으면 결국 공멸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는 걸 말해 주는 사례다.

지금 한반도는 바로 이 MAD 상태에 놓여 있다. 누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따지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일이 앞서면 이미 상황 종료가 될 수도 있는 판이다. 전쟁이 터져 비 오듯 쏟아질 포탄이 계급과 지위, 학벌과 성별에 따라 선택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근본적으로 무차별적이다. 그러나 그런 차별 없는 세상은 우리가 결코 원하지 않는다. 전쟁은 그 어떤 전쟁이라도 선한 전쟁일 수 없다.

모든 사태의 출발점은 한반도에 군사긴장을 강화하는 체제의 존재에 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적대관계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를 불신하고 공격당할 가능성을 극도로 예민하게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면 답은 무장력 강화다. 그건 국가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경험이 있다. 그건 북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적대적 상황을 낳았다. 그런데 전쟁 경험이 북에게는 다른 내용으로 돼 있다.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의 문제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 최강의 무장국가다. 그런 나라가 최신 무기를 한반도에 들여다가 군사훈련을 한다면 북의 공포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 된다.

북의 핵무장은 이런 공포감의 발로다. 일단 핵무장 국가가 된 이후에는 공포감이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군사력 과시 앞에서 겁을 집어먹지 않을 나라가 이 세상에 있을까. 그러니 북으로서는 핵을 쓰는 사태로까지 밀려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핵사용은 국가멸종을 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의 거친 자세는 그런 처지에서 지르는 비명에 가깝다. 우리를 자꾸 몰아대면 마지막 수단까지 불사하겠다는, "사즉생(死卽生)"의 시위를 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들을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계속 깔보이고 압박당하고 내몰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게 대미관계의 정상화를 요청했는데 번번이 거절당한 경험이 쌓여 있다면, 국제적으로 이런 처지는 처참하다. 이런저런 정성을 쏟으면서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도 거듭 거절당하고 있는 형편을 떠올린다면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체면의 손상과 현실적인 위협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하면 될까. 보다 얌전하고 점잖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가 최후의 무장력 해체까지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이라크에서 우리는 후세인 정권이 어떻게 공격당하고 파괴됐는지 봤다. 북으로서는 그런 상황을 자신에게 대입시켜 볼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나마 자신을 결정적인 순간에 방어할 수 있는 것까지 내놓으려 들까. 적대관계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조건에서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결국 필요한 것은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국제적 협약과 관계 구축이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무장력 강화 체제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순서가 거꾸로일 수가 없다. 서로에게 적대적인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답은 평화협정 체결이다.

그러면 미군 철수가 관건이 된다. 그건 이미 해법이 나와 있다.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미군의 성격과 규모를 그대로 두는 것도 적절치 않다. 미국의 성격은 국제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하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단계적 철수나 규모 축소를 하고 이와 함께 동북아 전체의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만들어 가면 된다. 집단안전보장체제의 중심에는 군축감시가 자리 잡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를 제의했지만 북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왜 그럴까. 한미 군사합동훈련을 지속하고, 한일군사 동맹체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대화 제의의 진정성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말로 하자고 하면서 계속 주먹싸움 연습을 하고 있다면 상대가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화 제의와 함께 군사훈련 즉각 중단이라는 결단을 보인다면 사태는 급격하게 반전될 것이다.

군사훈련 중단은 북의 위협에 대한 굴복이라는 식으로 볼 일이 결코 아니다. 평화를 주도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비상사태에 대응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도 이런 상황에서 거칠게만 나올 일은 결코 아니다. 그건 남북대화를 위해 애쓰는 남쪽의 평화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 절실하게 중요한 것은 평화구축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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