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희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노동과 삶 대표)

고용보험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8년째다. 고용보험에 따른 실업급여(주로 구직급여)는 지난 18년간 많은 실업자들에게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도움이 됐다. 그러나 실업급여 혜택은 아직도 대다수 실업자들에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자기 사정에 의한 이직’에 대해 구직급여의 수급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규정(고용보험법 제40조제3호·제58조제2호) 때문이다. 해당 법 규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40조(구직급여의 수급 요건) ① 구직급여는 이직한 피보험자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지급한다. (후략)

3. 이직사유가 제58조에 따른 수급자격의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제58조(이직 사유에 따른 수급자격의 제한) 제40조에도 불구하고 피보험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직업안정기관의 장이 인정하는 경우에는 수급자격이 없는 것으로 본다.

2. 자기 사정으로 이직한 피보험자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가. 전직 또는 자영업을 하기 위하여 이직한 경우

한마디로 말해서 위 규정에 의하면 근로자는 비자발적인 이직(해고·권고사직·계약기간 만료 등)을 당해야만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자발적으로 그만뒀다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물론 자기 의사로 사직했더라도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미달·과도한 연장근로·사업장 이전 등으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 체력부족이나 상병으로 업무 수행이 곤란한 경우 등 구직급여의 수급자격을 인정받는 예외사유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들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예외사유로 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범법행위가 있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이유로(또는 그러한 범법행위에 대해 신고하거나 법적 대응하기가 부담스러워서) 회사를 다니기가 곤란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컨대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로 인해 이직하는 것은 구직급여 수급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주 12시간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주 10시간 정도의 연장근로에 시달리다가 그만뒀을 때 수급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지금보다 좀 더 비전이 나은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직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 이직한 근로자가 곧바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당장 생계난을 감내해야 한다. 고용보험의 보호가 시급한 엄연한 실업자임에도 단지 ‘자발적인 이직’이라는 이유로 구직급여 수급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아니 구직급여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심히 의문이 든다.

노동부의 실업급여 업무편람에서는 수급자격 제한의 의의에 대해 "실업급여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실업한 경우에 지급되는 것이므로 고의로 보험사고를 유발한 피보험자의 급여를 제한하는 일반 보험원리를 적용해 타 보험가입자에게 미치는 불공평한 결과를 방지하고 근로의욕 저하, 실업급여의 남용방지 및 보험재정의 건전성유지 등을 위해 이직사유에 따른 수급자격 제한은 불가피하다"며 "ILO 협약은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이직사유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실업급여의 지급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에 외국의 예를 소개하면서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의 경우 자기 사정에 의한 이직 또는 중대한 자기 귀책사유에 의한 해고라 하더라도 수급자격은 일단 인정하되, 일정기간(1~3개월) 동안만 실업급여 지급을 유예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수급자격 제한 제도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노동부도 언급하고 있는 ‘외국의 예’가 정답이라고 본다. 실업급여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비책을 둔 상태에서 모든 사유의 이직에 대해 수급자격을 열어 놓아야 한다. 실업급여가 이직을 고민하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때, 기본적 노동복지 제도로서 고용보험의 위상이 확립될 것이며 더 많은 근로자들이 실업급여의 보호를 받게 될 때 고용보험 재정 확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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