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83.7%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이들의 조직률은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임금을 메우고 있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찾지 못하면 우리 노동자의 미래는 없다. 매일노동뉴스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해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네 차례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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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업무가 끝나면 그녀는 짐을 싸기 바쁘다. 맡겨 놓은 아이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전화하면서 고객들에게 욕먹은 것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지만 마음을 진정할 시간도 없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그녀가 한 달에 버는 돈은 110만원. 남편과 같이 일하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끔찍한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월급이다.

110만원으로 생활하기 힘든 30대 여성노동자는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상시적으로 야간에 일을 해야 한다. 갤럭시4·옵티머스G프로와 같은 잘나가는 휴대폰 관련업체가 있는 공단에는 '상시야간 일'을 구한다는 구직공고가 자주 뜬다. 상시야간 일을 하면 몸은 고달프지만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일하기 때문이다. 퇴근해서 아이들 아침밥 차려 주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면 몸을 뉘고 잠을 청한다. 오후 5시쯤 일어나서 아이들 저녁밥 먹이면서 그날 하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녁 7시다. 그때 출근한다. 그렇게 상시야간 일을 하면 200만원가량을 번다. 아이들 얼굴도 보고 200만원도 벌 수 있는 일자리다. 갤럭시4·옵티머스G프로 파이팅….

정규직이 되면 상여금 400%가 생긴다. 1년 정도 고생하고 과장님에게 잘 보이면 석 달에 한 번 100만원 보너스를 받을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이니 ‘주택자금 대출’이니 그런 것은 상상도 못한다. 회사에 밉보여 주임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정규직이지만 상여금 400%가 어딘가. 물량이 많으면 한몫(?) 잡는다. 밤 10~11시, 하루 4시간 기본연장에 토·일요일 쉬는 날도 없이 신나게 '뺑뺑이'를 돈다. 지난해 12월엔 물량이 넘치고 넘쳐 잔업과 특근을 정말 원 없이 했다. 그렇게 해서 202만원을 받았다.

이렇게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량이 적으면 "내일 나오지 마라", "오전만 근무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그리고 연차를 깐다. 연차를 까이고, 까이면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면 월급이 줄어든다. 2월엔 80만원밖에 못 받았다. 걸핏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일이 많으면 힘들어 죽겠고, 없으면 빚에 쪼들려 죽겠고….” 이때쯤 되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회사 그만둬야 하나…. 400% 상여금이 눈에 밟힌다.

그래도 이건 규모가 큰, 그러니까 적어도 100명은 되는 사업장 얘기다. 30명 정도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이라고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은 없다. 공연히 세금만 뗀다. 4대 보험이랍시고 15만원씩 떼 가면 한 달 100만원도 못 번다. 그래서 우리 언니는 정규직 같은 것, 안 한다.

경기도 수원의 인구가 늘고 있다. 수원·화성·오산 등 넓은 권역에 걸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데다 자동차부품사나 전자산업 유관업종 일자리가 많아 저성장 시대에도 구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최저시급이기는 하지만 잔업도 있고, LG·삼성전자·현대기아차그룹에 납품하는 부품사답게 상여금도 200% 이상씩 준다.

파견업체도 친절하다. 빠르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퇴근하면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문자도 준다. 이유 불문, 퇴사하면 바로 다음날 파견업체가 다른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근로계약은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밀린 수당을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상담도 해 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파견업체도 있다. 상시적인 파견노동, 노동3권이 없을 뿐이지 파견업체가 고용은 보장해 준다.

이것이 제조업 공단의 실상이다. 서울·인천·안산·시흥·수원 등 대도시와 가까울수록 이런 실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곳에서 단순조립공으로 일자리를 구해 본 사람은 이상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안다. 노조운동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 공단에서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은 언감생심이다. 임금을 좀 더 받으려면 잔업·특근이 많은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걸 가장 잘해 주는 곳이 파견업체다. 오늘 회사에서 쫓겨나도 내일이면 파견업체가 전화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 ‘노동자의 권리’라는 무거운 말만 잠시 잊으면, 파견업체가 대행하는 고용안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공단 노동자들에겐 가히 나쁘지만은 않다. 파견업체가 차악(次惡)의 역할을 하며 공단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면서 노조의 빈자리를 채워 가고 있는 것이다. 공단에서 노조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워져 간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를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기에는 이름이 너무 무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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