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민주노총에서 조직의 대표를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달째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생각도 든다. 사전을 찾아보니 ‘대표’는 ‘대표자’의 준말이다. 또 대표란 “조직이나 집단을 대신해 일을 하거나 생각을 드러냄”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대표라고 하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전태일 동지다. 모란공원에 가면 전태일 동지의 묘소가 있고 그 묘소 옆에 작은 비석이 하나 서 있다. 1970년 11월19일 전태일 열사를 묻던 그날 세운 비석에는 ‘기독청년 전태일 삼백만 근로자 대표’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전태일 동지가 산화하던 70년 당시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총수가 겨우 300만명밖에 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또 그 당시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우리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지 못하고 근로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비문을 볼 때마다 노동자수가 참 많이 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독재정권에게 빼앗겼던 ‘노동자’라는 소중한 자기 이름을 되찾기까지 참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귀한 목숨을 바쳤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전태일 동지에게 어째서 300만 근로자의 대표라는 비명을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태일 동지가 생전에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을까. 모른다. 아마 아닐 것이다. 전태일 동지는 바보회 회장과 삼동친목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고 명함에도 그렇게 박아서 다닌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당시 사람들은 전태일 동지 비석에 그처럼 명함에 박아서 다니던 이름이 아니라 ‘삼백만 근로자 대표’라고 새겨 넣었을까.

전태일 동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서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을,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 가는 나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태일이라는 한 아들을 잃지만 그 대신 수많은 아들을 얻을 터이니 조금도 슬퍼하지 마세요.”

전태일 동지는 물론 직접적으로는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동지는 70년 8월9일 쓴 ‘결단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그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그러나 동지는 단지 3만여명의 평화시장의 그 어린 동심들만을 위해 투쟁하고 산화한 것이 아니다. 그 불쌍한 어린 여공들의 모습을 통해 그 100배나 되는 이 땅의 300만 노동자들의 빼앗기고 짓밟힌 모습을 봤던 것이다. 나아가 소외되고 짓밟힌 모든 밑바닥 인간들의 모습을 봤던 것이다. 그리고 외쳤던 것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전태일 동지의 묘비에 그의 호칭을 삼동친목회 회장이나 3만 근로자의 대표가 아니라 300만 근로자 대표라고 새긴 것이리라.

누가 되든 이번에 새로 민주노총의 대표자가 되는 사람은 저 높은 곳을 쳐다보지 말고 전태일 동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불쌍한 내 형제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가까운 (그렇지 않은 조합원들도 있지만) 8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만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2천만 노동자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국민의 10~20%를 뺀 밑바닥 인간들, 밑지는 인생들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명함에는 비록 민주노총 위원장이라고 박아서 가지고 다닐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전태일을 '인간상의 표준'으로 삼아 그런 노동계급 대표성을 가지고 결연하게 투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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