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한국 최초로 산별노조를 띄웠다는 자부심으로 그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기업별 노조로는 꿈꿀 수 없었던 여러 성과도 있었고요. 현장 조직의 투쟁력을 끌어올려 제2의 산별운동을 시작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저지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요 근래 유지현(45·사진) 위원장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유 위원장은 올해 2월 말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추진을 선언한 이후 서울과 진주를 오가며 먹고, 자고, 투쟁하고 있다. 그랬던 그가 이달 1일 저녁 <매일노동뉴스>에 인터뷰를 자청했다. 산별노조 창립 15주년과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해 할 얘기가 많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지난해 여러 병원들이 교섭에 참여하면서 산별교섭의 틀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주의료원 사태의 경우 홍준표 도지사가 버티기로 일관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별교섭, 완성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

- 얼마 전 산별노조 창립 15주년이 됐다. 그동안의 성과를 소개한다면.

“98년 2월27일 대한민국 최초로 산별노조로 전환한 후 노동운동을 선도해 왔다고 자부한다. 2007년 산별 노사가 4.5% 임금인상에 합의했는데, 이 중 1.5%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직장 내 차별시정을 위해 쓰기로 했다. 보수언론에서도 ‘아름다운 합의’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지역과 지부 단위로 열악한 청소용역 노동자들이나 요양보호사들을 조직화할 수 있었던 것도 산별이기에 가능했다. 조직의 특성상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 출범 당시부터 암에 대한 무상의료를 포함해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해 여러 운동을 전개해 왔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도 이런 뜻이 담겨 있다.”

- 사용자단체인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가 2009년 8월 해산했는데.

“15년이 지났지만 산별교섭와 관련한 법·제도는 제자리다. 투쟁으로 이만큼 끌고 온 것이다. 그런데 산별교섭을 하다 보니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집단교섭의 경우 아무래도 그 결과가 하향 평준화되기 쉬우니까. 2009년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임금인상률 조정안(3%)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 역시 2007년 이후 큰 진전이 없다. 사용자들이 산별노조에 대응해 단체를 구성하거나 교섭장에 나와야 할 의무가 없다 보니 이러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 최근 들어 소속 사업장 중 상당수가 산별교섭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교섭대상 130개의 사업장 중 71개가 산별교섭에 합의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사용자단체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노사 공통의 정책의제를 개발하기 위해 포럼도 만들었다. 포럼에는 교섭에 나오지 않았던 병원장은 물론이고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실무자도 참여한다. 주로 국립대·사립대병원이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끌려가기 싫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포럼 등 사전 논의구조를 통해 교섭의 방법·시기·의제를 먼저 제안해 보라고 요청하고 싶다.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산별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유 위원장은 지난해 1월 6대 위원장에 취임하며 ‘제2의 산별노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유럽식 산별교섭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현실에 맞는 산별교섭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며 "지금의 상황은 완성된 산별교섭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도지사 시간이 갈수록 불리"

- 진주의료원 폐업을 저지하는 데 조직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

“향후 우리나라 의료가 공공성을 향해 나아가느냐, 돈벌이의 수단이 되느냐를 가르는 일이다. 한국 공공의료의 미래가 여기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자 때문에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라면 34개 지방의료원이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원자력병원·보훈병원·산재의료원도 마찬가지다. 지방의료원은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지역거점병원 역할을 한다. 예컨대 행려병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를 한다. 진주의료원을 문을 닫는다고 하면 이들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 홍 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강성노조 해방구라고 표현했다.

“감가상각비를 감안하면 진주의료원 1년 적자가 40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60억원으로 부풀려져 있다. 홍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문을 닫고 연간 50억원을 서부경남 의료인프라 확충에 쓴다고 한다. 진주의료원에 1년간 지원하는 돈이 12억원이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대신 25억원만 지원해도 경영이 정상화될 것이다. 진주의료원 조합원들의 임금은 2008년 이후 그대로다. 지난해에는 4개월치 임금밖에 받지 못했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30명 명예퇴직·신규채용 중단에도 합의했다. 강성노조 해방구라는 말이 왜 나오나.”

- 향후 전망은.

“총연맹에 요청해 이달 13일 진주에서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우리 사안으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노동계와 복지부·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홍 도지사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는 보궐선거 출마 당시에 5년6개월을 보고 출마한다고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경상남도는 지난달 30일 진주의료원 휴업 예고기간이 경과하면 이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데 3일 오후 돌연 휴업에 돌입한다고 공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진주의료원 휴업을 전격적으로 강행한 것은 진주의료원을 폐업으로 몰아가기 위한 행정폭거”라며 “물리력을 동원해서 환자생명권과 도민건강권을 짓밟겠다는 폭력적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라”

유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보건의료 공약에 대해 “내용이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진영 복지부장관에게는 “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의료기관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 ‘지역별 병상 총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통령이나 복지부장관을 평가한다면.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기초연금 인상과 4대 중증질환 무상진료 등 많은 공약이 변질됐다. 진주의료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지역거점 병원 확대 등을 약속했는데, 진주의료원 폐업을 지켜만 본다면 이를 어기는 것이다. 진영 장관에게는 노조를 공식적인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기존의 여러 복지부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된 적이 없다. 병원협회나 여러 직종단체는 되는데, 노조는 왜 안 되나. 현재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기존의 장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 의료시장이 이른바 ‘빅5’ 병원으로 양극화하고 있는데.

“독과점 문제가 삼성·현대 등 재벌기업 위주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의료산업 양극화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가까운 거리에 믿을 수 있는 병원이 있기를 바란다. 의료기관 쏠림현상은 출산 등 위급한 순간이 발생할 경우 국민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 국가가 의료공급체계를 전면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처럼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조합원 대다수가 교대제 형태로 일하는 간호사들이다. 현대자동차 주간연속 2교대제를 어떻게 보나.

“일반 공장과는 달리 병원은 24시간 운영된다. 그동안 교대제와 관련한 연구를 많이 했다. 결론은 ‘죽지 않을 만큼 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5년 미만이다. 야간근무로 빛에 오래 노출돼 유방암 발병률도 다른 직종에 비해 훨씬 높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력을 두세 배 확충해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권뿐만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지난해 국회와 협의해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을 발의했다. 핵심은 국가가 인력 수급·관리에 나서라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같이 환자 4명당 간호사 1인을 법제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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