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한문 농성촌이 지난달 3일 방화로 소실됐다. 그런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법률원에 방화 용의자의 접견과 무료 변론을 요청했다.

땀과 눈물로 1년 가까이 가까스로 지켜 낸 농성촌이 모두 불에 탔고 동료 노동자 1명이 병원에 실려 간 상황에서 배후가 있을지도 모르는 방화 용의자에 대한 변론이라니. 그것도 중구청의 농성장 철거는 법리적으로 부당하다고 법정에서 다투는 당신들의 소송대리인에게 농성장을 불태워버린 사람을 변론하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분향소는 둘째치더라도 자신들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었던 방화 용의자에 대한 변론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단전·단수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도록 1대뿐인 비상발전기를 사용했다는 2009년 옥쇄파업 당시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짜증이 밀려온 것도 사실이다.

방화 용의자 변론을 요청한 사연은

방화 용의자를 접견하러 남대문경찰서로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탐탁치 않았다. 남대문경찰서에 있던 방화 용의자는 필자의 접견과 변호인 선임을 완강히 거부했다. 내심 안도감을 느꼈다.

남대문경찰서에서 돌아와 한 조합원에게 방화 용의자에 대한 변론을 요청한 진짜 이유를 물었다. 그 조합원은 방화 용의자가 경쟁과 야만으로 점철된 이 사회로부터 소외돼 자신의 분노를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했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방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또한 사회적 희생자이기 때문에 분노와 적대를 양산하는 사회에 대한 개선 없이 그에게 무거운 처벌이 떨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의연하고 사려 깊은 의도가 방화 용의자가 변론을 완강히 거부했을 때 안도감을 느꼈던 옹졸한 필자의 모습을 참으로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쌍용차 노동자들이 의연하게 사태에 대처하는 동안 보수언론들은 마침 잘됐다는 식으로 방화가 마치 노동자들의 집회 때문에 일어난 양 떠들어대고 농성장을 하루 빨리 철거하라고 독사의 혓바닥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구청이 그 장단에 맞춰 화마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지난달 8일 아침부터 200여명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분향소 철거를 시도했다.

진정 철거돼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방화로 인해 계고처분의 대상물인 천막이 소실됐기 때문에 계고처분이 실효돼 새로운 계고처분이 없는 한 절차적으로 위법한 행정대집행이다. 두 동의 천막을 사용해 집회를 진행하는 것이 교통에 현저한 방해를 주지 않는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비춰 1동의 분향소만이 존재하는 현재는 행정대집행의 실체적 요건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무리 항변해 봤자 그들은 귀를 막고 막무가내로 쳐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등 많은 활동가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에도 두 차례 기습철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제 명백히 하고자 한다. 진정으로 철거돼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회계조작 및 기획부도 의혹 등에 대해 2009년 정리해고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한 이들이다. 국정조사 약속을 번복한 것도 모자라 비겁하게 방화를 기회 삼아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폭력적으로 짓밟으려는 집권 여당과 그 하수인인 중구청장이다.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들의 협박과 침탈 시도에 맞서 의연하고 아름답게 하지만 힘겹게 싸우고 있다.

우리는 비겁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노동자들과 상처받은 자들의 성지이자 아름다운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대한문 분향소를 침탈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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