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2012고정2203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강문대
변호사
(법률사무소 로그)

사건의 경과 및 판결의 내용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 노동조합은 2009년 10월27일 설립됐다. 그 이전에는 의료원 산하 각 지역병원별로 노동조합이 설립돼 있었는데 이날 하나의 통합노조를 설립한 것이다. 같은 의료원 산하에 있는 노동조합이 하나로 통합해 조직력을 키우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도 일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이에 반발하면서 이 같은 방침을 확정한 대의원대회 결의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그 신청은 당연히 기각됐다. 가처분 사건의 1심과 2심에서 모두 국내의 대형 법무법인이 소송대리인으로 참가했는데, 노동조합측에서는 그 점을 근거로 조합원들이 병원측으로부터 돈을 지원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어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한편 당시 중앙의료원장은 취임식에서 “인간 사랑을 실천하는 ○○○이사장님의 취지에 반하는 통합노조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이사장님의 취지에 반하는 노조는 척결할 것이며, 노조가 어떻게 나오든 병원은 강하게 대처할 것이다”는 발언을 했고, 그 뒤 개최된 두 번의 워크숍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중앙의료원장은 벌금 5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노조와 노조위원장은 위 중앙의료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고, 중앙의료원장은 노조와 노조위원장에게 각 20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판결을 선고받았다.

통합노조가 이 같은 소송을 종결짓고 조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려고 할 무렵 통합노조는 난데없는 일을 당했다. 이 소송이 종결된 지 3개월 정도 지난 무렵인 2010년 11월1일 노조 위원장이 해고된 것이다. 병원측은 노조 위원장의 직급을 문제 삼아 노조 위원장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즉시 원직에 복직해 업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노조 위원장이 이에 대해 반발하면서 명령에 따르지 않자 병원측은 무단결근을 이유로 노조 위원장을 해고했다. 이후 노동위원회, 가처분, 행정소송이 이어졌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최종적으로 병원측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병원측이 상고했지만 국정감사를 앞두고 상고를 취하해 판결이 확정됐다. 통합노조의 위원장은 약 2년 만에 복직했다.

그런 와중에 중앙의료원 산하의 각 병원에는 새로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각 병원의 중간관리자들은 노골적으로 새로운 노동조합을 비호하면서 근로자들로 하여금 그 새로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종용했다. 그로 인해 새로운 노동조합은 각 병원에서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해 나갔다. 이에 통합노조측은 새로운 노동조합을 ‘어용노조’라고 규정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통합노조측도 병원측이 ‘어용노조’의 설립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지는 못했는데, 고용노동부와 검찰 조사 결과 그 점이 명백히 밝혀졌다. 법원도 그 점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중앙의료원장 ○○○를 비롯해 중앙의료원의 간부 및 그 산하 각 지역병원의 간부들이 2010년 3월9일부터 2011년 7월27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근로자들의 노조활동 및 노조 동향파악, 기존노조 와해 및 신설노조 설립 등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한 후 이를 각 병원 수간호사, 계장, 팀장 등 중간관리자에게 전달하고, 중간관리자들로 하여금 소속 직원들에게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것처럼 해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이 항소하지 않아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

법원 판결의 의미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면서 사용자가 노조 설립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성기업 사건을 통해서는 ‘노무법인 창조 컨설팅’이 노조파괴에 개입해 왔다는 사실이 관련 증거를 통해 명백히 밝혀졌다. 그에 따라 노동부는 ‘노무법인 창조 컨설팅’에 대한 설립인가를 취소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10월23일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대표와 이 업체와 계약을 맺은 유성기업, 상신브레이크 대표 등 31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검찰은 수사를 종료하지 않고 있다. 유성기업에도, 한진중공업에도 현재 기존 노조와는 별개의 노조가 설립돼 있고, 이 노조들은 한결같이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에 노조가 설립되기 직전에 기업별 노조가 설립돼 단체협약까지 체결된 사실도 나중에 밝혀졌다. 이 기업별 노조는 노조 설립신고증을 발부받은 지 6일 만에 삼성에버랜드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그 단체협약서는 공개된 적이 없다. 노조의 조합원의 규모와 대상자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설립 허용 직후인 2011년 8월 제출한 보고서에서 당시 설립된 복수노조의 66%가 ‘어용노조이거나 친사용자 성향’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는데, 그 뒤에 그 노조들이 보인 행태에 비춰보면 이 같은 분석에 지나친 점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복수노조 설립 허용 이후 지난 1년6개월 간 벌어진 이 같은 일을 놓고 보면 새로운 복수노조의 설립에 사용자가 개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법원 판결이 선고된 적은 없었다. 그런 일을 드러내 놓고 하는 사용자도 없는데다가 노동부와 검찰이 그런 문제에 대해 강력한 처벌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은 다른 사업장과는 달랐다.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확한 부당노동행위를 공공연히 행한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부도 그 행태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수사에 착수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의 증거들이 다수 확보됐다. 법원은 그 증거들을 토대로 사용자의 위법행위를 인정했다. 그 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돼 왔던 일이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처음으로 법원의 판결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이 판결의 내용 속에 특별한 법리적 쟁점이 포함돼 있지는 않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활동에 개입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고 하는 판단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따라서 이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평범한 판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판결에는 정상적인 노사관계 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범죄사실’이 담겨져 있다. 이 판결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즉, 심하게 비정상적이고 전근대적인 부당노동행위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형병원 사업장에서 벌어졌음이 법원의 판결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는 것이 이 판결이 갖는 의미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대외적으로나 후손들에게 매우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지만, 또 한편 향후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는데 계기가 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폭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이 판결에 의하면 병원측이 새로운 노조의 설립에 관여했음이 분명하다. 그 점을 전제로 놓고 보면, 그 노조는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닐 소지가 있다.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만든 노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노조의 설립 과정에 사용자가 관여한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그 노조의 설립에 참가한 근로자들이 얼마나 자주적으로 관여하였는지를 개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법원은 이와 같이 자주성이 결여한 노조는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고 하더라도 노조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3도855 판결). 이 판결은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의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고 해도 그 설립 경위 및 활동 내역에 비춰 볼 때 적법한 노동조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존 통합노조는 이 형사 판결을 근거로 노동부를 상대로 새로운 노조의 설립신고증 교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소송이 제기될 경우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도 새로운 노조에게 자주성이 있다고 인정될 여지가 있는지, 노동부가 자주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다른 노조가 노동부를 상대로 설립신고증 교부의 취소를 구할 수 있는지 등이 다투어질 것이다. 향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복수노조 설립은 노동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것은 분명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권리가 확보된 지금 복수노조 설립은 부당노동행위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의 보루가 노동통제권의 교두보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형사 판결에서 인정된 벌금 500만원과 300만원은 너무 미약하다. 노동기본권의 보장은 좀 더 많은 시련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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