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란
공인노무사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SK하이닉스 반도체 청주사업장에서 지난달 28일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이 라인 내에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대피는 없었고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회사측은 이번에 누출된 감광액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화학물질이 아니며 단순노출로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강조했단다. 또 몇몇 언론이 환경부 직원의 말을 인용해 감광액이 유해화학물질이 아니라는 보도까지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감광제에 백혈병 유발 벤젠 포함”

그러나 감광액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하이닉스측의 주장과 일부 보도는 완전히 틀렸다. 감광액 누출사고를 경미한 사고로 보이게 하려는 변명일 뿐이다.

그동안 삼성반도체 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백혈병과 암, 생식독성 등의 피해를 호소하면서 작업 중 빈번한 화학물질 노출 경험을 증언해 왔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화학물질 노출경험이 바로 감광제다.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은 감광제 병이 깨지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고 전한다. 병이 깨지지 않아도 감광제가 포토공정에서 사용되면서 번져서 나오는 고약한 냄새로 인해 두통과 어지럼증을 경험했다는 노동자도 많다.

노출 당시에는 냄새 발생과 두통·구토·어지럼증 정도일수 있으나 감광제를 포함한 많은 화학물질들은 서서히 인체에 영향을 미쳐서 수년 이상이 지나서 암이나 여러 질병들을 일으킬 수 있다.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하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감광제 성분분석 결과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이 포함돼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고 이숙영에 대한 백혈병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감광제에는 생식독성(생리불순·자연유산·임신지연 등)·접촉성 피부염·직업성 천식 등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감광제에 빛을 쬐는 작업과정을 통해서 2차 부산물로 벤젠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심각한 독성유해물질 노출사고에 대해, 당장 눈에 보이는 사상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미한 사고라고 발표하는 회사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화학물질 정보공개 및 철저 감독해야

독성물질은 감광제만이 아니다. 겉으로 볼 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 보이는 첨단산업 이미지와 달리 반도체 전자산업은 수많은 독성화학물질들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유해위험 산업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이 산업은 환경오염과 질병피해 등 유해성 문제 때문에 피해를 본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 뒤 반도체·전자 자본은 저비용 생산을 위해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그리고 또다시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 환경피해와 질병피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첨단전자기기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당장 생산을 멈추자고 주문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문제, 병들 수 있는 문제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영업기밀을 이유로 제대로 성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는 화학물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체물질을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 노동자들과 지역주민에게 안전보건영역에 있어 실질적인 참여권을 보장해야한다. 불충분한 감독관 숫자를 늘리고 철저한 감독을 해야 한다. 사업주에게 높은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는 문제도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중요하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대안을 몰라서 적용하지 않았는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다 알지만 ‘기업 우선’이라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이해관계의 틀을 바꾸는 게 더 핵심적으로 고민돼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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