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결제원지부

5대 국가전산망 중 하나인 금융공동망을 관리하는 금융결제원이 새 원장 선임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는 원장후보추천위원회 진행 내역 공개를 둘러싸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송창헌 현 원장의 임기가 오는 6일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새 원장을 결정하는 사원은행 총회가 이번주 초에 열릴 전망이다.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만난 정윤성(45·사진) 금융노조 금융결제원지부 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폭풍전야”라는 말로 정리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3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싸움이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쪽과 감행하는 쪽이 벌이는 싸움이다.

금융결제원의 의사결정구조는 이렇다. 금융결제원은 한국은행과 은행법상 금융기관들로 이뤄진 사원은행과 준사원은행, 그리고 상호금융·비은행금융기관인 특별참가기관으로 구성된다. 이 중 핵심 의사결정은 한국은행 총재와 10개 시중·국책·특수은행이 들어가 있는 총회에서 이뤄진다.

새 원장 선임도 마찬가지다. 사원은행 총회는 추천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한다. 5명의 추천위원 모두를 선임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는 쪽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이 비록 은행 감독권한은 금융감독원에 내줬지만 은행권에 미치는 입김은 여전히 세다. 실제로 역대 원장은 한국은행에서 퇴임한 임원이 내려왔다. 정 위원장은 “3년 전에도 추천위원 3명이 한국은행 출신이거나 특수관계에 있었던 인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심스러운 판국에 추천위원회의 불투명한 운영은 이런 의혹을 더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의사록 공개를 둘러싼 노사의 갈등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노조는 공개를 요구하고 결제원은 추천위원회의 비공개 의결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금융위원회 감사에서 추천위원회 위원 자격 문제와 의사록 미작성 문제가 적발돼 지적을 받았는데도 올해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이를 두고 “밀실야합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추천위원회가 자기들 스스로 회의록 비공개를 의결하고 공개를 하지 않는다”며 “추천위원이 누구인지, 누가 원장 공모에 응모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누가 최종 후보로 선정됐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정보가 모두 차단되고 있으니, 지부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제한적이다. 매번 ‘낙하산 저지 투쟁’을 벌인 것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추천위원회 규정을 바꿔 추천위원회에 지부가 추천하는 인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도 했지만 묵살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부가 직접 원장 후보에 등록하는 것이다. 지난 3월11일 마감된 원장 후보자 등록에 정 위원장이 직접 응모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정 위원장은 “탈락했다는데 전해 듣지 못했다”며 “서류전형 결과도 통지하지 않았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중에 분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여운을 줬다. ‘무모한 도전’만은 아닌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바로 ‘소송’이다.

정 위원장은 “추천위원회 진행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할 생각”이라며 “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도, 원장 선임 무효확인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부는 지난 2월 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새 원장 선임과 관련된 설문이었다. 설문조사를 통해 지부는 새 원장이 고려해야 할 8대 경영현안을 선정했다. 지부는 고용안정 보장 등을 담은 경영현안을 이달 초에 발표하고, 새 원장의 이행방안을 물을 예정이다. 새 경영진과 대화 여지를 열어 놓겠다는 뜻이다.

“금융결제원이 구축한 지급결제시스템은 세계가 주목하고 배우러 올 정도로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이런 위상을 발판으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금융결제원은 한국은행의 자회사가 아닙니다. 내부 임원 선임 도구로 보면 안 되죠. 금융결제원 조직과 직원을 가장 앞선 순위로 생각해야 합니다. 3년 임기 원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직이 발전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고용안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고요.”

새 원장을 선임할 사원은행 총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 총회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소통으로 보인다. 폭풍전야 뒤 거센 폭풍우가 쏟아질지, 미풍으로 바뀔지는 바로 사원은행 총회, 정확히는 한국은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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