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오늘날 사회병리현상은 노동과 자본의 갈등구조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사회가 다변화될수록 노동자와 노동자, 사용자 대 사용자 간의 갈등도 증가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의 갈등이 대표적인 노-노 갈등이다. 자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한 거래관계는 자본 간의 갈등을 대변한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다양한 갈등관계를 포괄하기 위해 대화의 틀을 확대하려는 이유다.”

최종태(74·사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최 위원장은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가 정부 주도형이었다면 이제는 이해당사자 중심으로 새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됐다”며 “새로운 대화의 틀을 유연하게 짜 나가는 것이 노사정위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98년 구조조정 법제화 합의, 비정규직 문제 단초 제공"

- 상시적인 사회적 대화를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사회적 대화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 경우에 성사된다.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또는 제도나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그것이다. 노사정위는 그동안 위기극복을 위한 대타협을 주요 목표로 삼아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상시적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 대화 역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사회적 대화의 틀이 시대변화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뜻인데. 지금까지의 노사정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노사정위는 98년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노사정위가 생기기 전 김영삼 정부 때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가 있었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노사정위 출범 당시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우리 정부에 노동유연화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가 구조조정 법제화와 파견법 제정 합의를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 양극화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노사정위 활동 중 가장 부족했던 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관건은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고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바로 고용이다. 노사정위는 일자리 확대와 양극화 해소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함께하자”

-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주체는 누구인가.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설명하겠다. 과거 단순한 구조의 사회에서는 구심력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노동자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중요한 대화의 파트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원심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여성·장애인·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주변으로 확장돼 나가야 한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을 위한 대화의 틀도 늘어나야 한다. 노사정위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가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는 장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 구심력의 하나로 든 민주노총은 99년 2월 대의원대회 결의로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인데.

“민주노총이 99년에 노사정위를 탈퇴한 것은 타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직의 명분도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저력이라면 충분히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거저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역사의 결실이다. 비록 최근 임원선거 등을 놓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직노동자의 구심체로서 대표성은 확고하다.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거쳐 결정한 노사정위 탈퇴결의를 번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겠다. 2009년 10월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양대 노총 위원장이 참여했던 6자대표자회의 같은 유연한 논의 틀을 확장할 생각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마무리되면 공식 만남도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이 오케이한다면 언제든 찾아가 소통할 것이다.”

- 노사정위가 대화의 형식을 다양하게 준비하겠다는 말인가.

“노사정위는 그동안 세 번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다. 또 113건에 달하는 정책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 주도형이라는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면 될수록 기존의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정부 주도적 사회적 대화에서 탈피해 이해당사자 중심의 사회적 대화로 나아가야 한다. 거버먼트(government, 정부)에서 뉴거버넌스(new governance, 정부·민간 협력)로의 전환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변신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생명체는 환경과 상황이 변하는 대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고, 새로운 선택은 생명체 본연의 상태를 변화시키고, 이렇게 변화할 때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사정위도 전통적 방식의 회의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체를 연결해 주는 역할에 보다 충실할 계획이다.”

“사회적 대화 의제 결정방식 쉬워져야 … 노사정위법 개정 추진”

- 이명박 정권 기간에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특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노사정위의 소극적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개별기업의 문제와 국가 차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개별기업의 문제에 해당하는 영역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제3자, 특히 정치권이 개입할 경우 사태의 해결에서 멀어진다.

반면 쌍용차 사태를 두고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정리해고의 문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문제는 노사정위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쌍용차뿐만 아니라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노사정위는 노사정 각 주체가 합의를 통해 의제를 결정하는 구조다. 몇 차례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안건이 제시됐지만, 노사정 주체의 이견으로 정식 의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협의 의제를 보다 유연하게 결정하는 방안을 담은 노사정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4월 임시국회 때 발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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