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시간. 무엇일까.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은 권리인가. 노동자의 시간,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면 분명히 자유이고 사용자에 대한 권리일 수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는 그건 결코 노동자의 시간이 아니다. 노동시간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자를 부리는 사용자의 시간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권리일 수가 없다. 그런데도 권리라고 말해왔다. 분명히 사용자의 권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노동자의 권리라고 말하곤 한다.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제50조). 이것이 무엇일까. 노동자에게 이것은 노동의 시간에 관한 권리일까. 이 세상에서 노동시간은 사용자의 시간이니, 본래 노동자의 것이라고 천부의 권리로서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용자의 것으로 빼앗겨버린 시간이니 그 노동의 시간에서 벗어나야 노동자는 자유일 수가 있다. 노동자의 자유를 노래하는 노동운동은 그래서 국가의 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 쟁취를 자신의 구호로 해서 투쟁해왔고, 마침내 이 세상의 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제를 규정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해왔다. 1일 8시간, 그리고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는 없다고, 그것이 법이 노동자에게 보장해준 노동제라고 선언했다. 그러니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를 선언한 나라에서 노동자는 1일에 8시간만 일할 권리,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일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야 했다. 이렇게 노동법의 역사는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에 관한 역사였다. 이 나라에서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이라는 근로기준법 제50조는 이렇게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자의 권리로서 서 있어야 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그렇게 일하고 있어야 했다. 대기시간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1일 8시간, 1주 40시간 이내에서 일하고 있어야 한다. 아니었다. 도대체가 아니다. 이 나라 제조업체는 수십 년간 주야 맞교대제의 근로형태를 운영해왔다. 노동자들은 주간과 야간의 2교대제로 편성돼서 낮과 밤으로 일해야 했다. 1일 1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휴일근로까지 상시적으로 사업장은 가동됐다. 지난 3월부터 현대차·기아차 등 완성차를 중심으로 이른바 주간연속 2교대제가 운영되고 있다. 여전히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휴일근로까지 상시적으로 실시되고 있거나 실시될 예정이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주간연속2교대제 사업장이라도 1일 8시간, 1주 40시간 이내에서 일할 수가 없다. 근로기준법의 법정근로시간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얼마든지 1주에 12시간까지 이를 초과해서 근로할 수 있다고 근로기준법 제53조는 정해놓고 여기에 휴일근로는 이 12시간의 제한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노동부가 제멋대로 행정해석을 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면 노동제는 무용한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우리의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제한한다는 노동제는 없다. 근로기준법은 분명히 노동제를 정하고 있는데(제50조) 근로기준법은 명백히 노동제를 부정하고 서 있다(제53조 등).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가 시키고 노동자가 응해서, 즉 당사자가 합의해서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를 하는 것이 법의 문제라고 법의 결함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법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2.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부터였다. 1953년 5월10일 제정돼 같은해 8월9일 시행된 근로기준법은 본문에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고 정하고서 단서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제42조 제1항). 누구나 제정 근로기준법이 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였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국제노동기구(ILO) 제1호 협약에 따른 노동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단서에서 분명히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주 48시간이 아닌 주 60시간 노동제를 선언했던 것이다. 강제노동이 허용되고 있지 않은 이 세상에서 노동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 합의로 얼마까지 근로할 수 있다고 법이 정하고 있다면 그 시간까지가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노동시간인 것이다. 혹시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당사자 간 합의가 아니고 나라의 한 산업 노동자 전체가 그 효력을 적용받는 법률에 버금가는 정도의 산별협약, 산별노조와 사용자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노동시간을 엄격히 규제하는 노동행정기관이 승인하는 등의 절차를 통해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라면 노동제의 예외를 허용한 것이므로 그것이 노동제 자체의 전면적 부정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정 근로기준법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명백히 주 48시간 노동제를 부정하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주 48시간의 근로시간을 연장해서 근로할 수 있도록 이 문제의 규정은 그 뒤 법정근로시간이 44시간, 그리고 40시간으로 단축될 때에도 그대로 살아남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3조로 살아남았다.

3. 노동법도 다른 법률처럼 일본의 것을 쫓아서 제정되고 개정돼왔다. 도대체 일본의 법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이 나라에서 노동제에 관한 근로기준법이 이 모양인 걸까. 일본 노동기준법은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해서 노동을 시켜서는 아니”되고, “1일에 8시간을 초과해서 노동을 시켜서는 아니된다”고 정하고(제32조), 위반한 사용자는 처벌한다(제109조 제1호). “사용자는 해당 사업장에 노동자의 과반수로 조직되는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되는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노동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의 사전 서면 협정을 하고 이를 행정 관청에 신고한 경우에는” 협정에서 정하는 곳에서는 연장근로, 휴일근로를 할 수 있고(일본 노동기준법 제36조 제1항), 후생노동성장관은 협정에서 정한 노동시간 연장의 한도, 할증임금율, 기타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노동자의 복지, 초과 근무 동향 기타 사정을 고려하여 기준을 정할 수 있으며(제2항), 행정관청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 대표자들에게 필요한 자문 및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제4항). 노동기준법 제36조는 1주일 40시간, 1일 8시간 노동제를 노동자대표와의 서면 협정으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로서 효력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다만 후생노동성장관과 행정관청 등이 그 한도 등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자문·지도할 수 있도록 해서 일정한 규제 장치를 뒀다. 더구나 여기서 서면협정은 일본의 경우 과반수노조라도 기업별노조와 사용자가 합의해서 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은 더욱 문제다. 만약 이런 제도가 독일·프랑스 등 유럽에 있다면 노동조합과의 서면협정은 그 적용대상 등에서 법률에 버금가는 정도의 산별노조 단체협약에 의한 것이니 적어도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의 예외적 허용기준으로서 의미는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장단위로 조직된 기업별노조가 그 사업장에서 맺은 연장근로·휴일근로에 관한 서면협정이라면 법이 정한 노동제의 예외적 허용기준으로서 의미는 많이 퇴색되고 만다. 더구나 그마저도 없는 경우 노동자대표와의 서면협정으로 노동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사업장에서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용이하게 서면협정을 통해 노동제의 예외로서 연장근로·휴일근로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4. 다시 우리의 근로기준법을 보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사자 간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 여기에다가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이 12시간에 더하여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제53조)으며 휴일근로도 당사자 간 합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 등과의 사전 서면협정도 필요 없다. 사용자가 시키고 노동자가 응해서 일하면 그만이 돼버린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는 이 나라의 근로기준법에 이르자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의미를 전면 상실하고 만다. 본래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는 태평양 건너 일본에 가서는 서면협정이라는 예외적 기준을 설정해서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하더니 이 나라에 와서는 노동제는 노동제가 아닌 것으로 되고 말았다. 이상하다. 무엇이든 일본을 거쳐서 이 나라에 도입되면 본래 제도 취지는 사라져버린다.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고 만다. 원칙은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하고 예외가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자유도 그렇다. 본래 자유였던 것이, 일본에 가서는 책임이 강조되는 자율이 되고, 이 나라에 와서는 자유는 사라지고 책임만 남는다.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을 해설했던 당시 노동법 교과서는 적어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경우의 합의 또는 협정에 관한 방식에 대해서는 하등의 규정이 없다. 또 이 경우에는 사회부(현재 고용노동부)의 인가도 필요 없다. 그러나 이 제도는 8시간제(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에 대한 중대한 예외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방식절차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입법상의 결함이다.”(심태식, 노동법, 신구문화사, 1959, 294면)

이 60년 전의 노동제에 관한 입법상의 결함은 이 나라에서 여전히 노동제를 부정하고 서 있건만 지금은 입법상의 결함이라는 주장의 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법의 결함은 법해석의 결함을 딛고 서 있다. 세계 최장 수준의 장시간 노동은 노동제에 관한 법의 결함이 초래한 노동자의 자유의 박탈이었다. 분명히 말해야 한다. 입법상의 결함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