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기자

정부가 선도부를 자처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가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구걸행위·쓰레기 투기·침 뱉기·새치기·과다노출·노상방뇨 등 경범죄를 저지를 경우 10만~20만원 이하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금 50만원이 넘으면 현행범으로도 체포가 가능하다. 예컨대 "술에 취한 채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은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다. 시끄럽게만 해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초질서 위반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같은 경범죄는 시민들의 자율적 개입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6명이 죽고 11명이 크게 다친 여수산단 대림산업 공장 폭발사고·5명의 목숨을 앗아 간 인천국제공항철도 계양역 참사·아르바이트 학생 4명이 죽은 이마트 탄현점 질식사고·40명이 불에 타죽은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 사망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수 년째 똑같은 죽음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원청사업장의 안전보건 실태를 몰랐다. 하지만 원청 사업주들은 책임이 없다. 40명이 숨진 이천사고의 경우 원청업체는 2천만원의 벌금형으로 책임을 면했다. 노동자 1명의 목숨이 고작 50만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원청업체가 안전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도급계약을 맺는 원·하청 기업들이 돈 들어가는 산재예방을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까닭이다. 원청업체가 산업안전에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처벌은 영세한 하청업체가 받고, 대기업 원청업체는 벌금으로 떼우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여수산단 폭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죽는 건 일이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죽도록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입'해야 할 곳은 "시끄럽게만 해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현장"이 아니다. 정부가 하청노동자의 구조적 죽음을 방치하는 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와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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