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답답하다. 노동자 권리를 들여다 볼 때마다 답답하다. 임금, 노동시간, 해고와 인사이동, 업무상재해 등 이 나라 노동자 권리를 볼 때마다 그렇다. 근로계약이든 취업규칙이든 심지어 단체협약이든 노동자 권리가 기재된 무엇을 읽을 때면 그렇다. 노동자 스스로 제 권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래서 노동조합이라는 건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있어도 나는 답답하다. 소릴 질러보아도 소용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혼자라도 떠들어대야지 별 수 있나. 오늘은 노동시간을 보자. 주 40시간 노동제라고 부르는 노동의 시간을 말해보자.

2. 속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1주 40시간, 1일 8시간 이내로 노동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속은 게 분명하다. 근로기준법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제50조). 분명히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는 것이니 초과해서 노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110조 제1호). 법정근로시간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힘으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법으로 제한한 노동의 시간이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 법정근로시간을 자신의 노동의 시간으로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노동자는 속았다. 사용자들에게 속고 있는 걸까. 교수들의 노동법 교과서에서도 판사들의 판결문에서도 법정근로시간은 법이 정한 최대의 노동시간이 아니다. 법정 외 근로의 수당 지급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위 조항은 별도로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위 법정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제53조 제1항). 어차피 근로시간이야 근로계약의 내용이니 근로계약, 단체협약 등에서 정하는 것이고 당연히 당사자의 합의로 정하는 것이다.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합의로 근로계약의 주된 내용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 근로시간이다. 당사자의 합의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1주간에 12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니 법이 정한 최대의 근로시간은 1주간에 52시간이라고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이것이 법정근로시간이라고 교수와 변호사, 판사는 근로기준법을 해설하고 주장하고 판결해왔다. 1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초과한 노동의 시간은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지급하면 사용자는 1주 52시간까지 얼마든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폭력에 의한 강제노동이 아니라면 노동은 어차피 노동자가 하겠다고 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니 당사자의 합의는 당연히 전제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법이 정한 최대의 근로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에 12시간을 합산한 근로시간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이것을 주 40시간 노동제인 거라고 알아왔으니 엉터리 해석과 판결에, 무엇보다도 법에 노동운동은 철저히 속았다.

3. 인간의 역사는 봉건의 세상을 무덤에 묻고서 이 세상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세상의 질서가 바뀌었다고 이 세상의 권리장전은 선언했다. 과연 노동하는 인민에게는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봉건의 끝자락, 화폐지대라 했던가. 노동하는 인민, 농민은 농토를 스스로 경작하면서 봉건의 지배자, 영주 또는 지주에게 수확한 경작물의 일부를 화폐로 바쳤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하는 인민, 노동자는 농토든 공장이든 뭐든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스스로 경작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의 권리들이 세워지면서 노동하는 인민은 생산수단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잃었고 그것은 오로지 자본가의 것이 되었고, 이제 자본가는 사용자로 노동자를 사용하고서 생산물의 일부를 화폐로 지급하고 있다. 노동하는 인민은 농노의 신분에서 근로계약을 맺는 노동자로 변경돼서 이제 자신의 노동에 관한 지배권을 잃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노동시간은 바로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을 지배하는 시간이고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복종하는 시간이며 노동자가 자유를 잃어버리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제를 위한 투쟁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노동운동은 자본에 맞서 노동자 권리를 세우기 위해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리고 노동운동은 마침내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로 하여금 노동제에 관한 제1호 협약으로 채택하도록 했다. 여기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주 48시간, 1일 8시간 노동제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최대의 노동의 시간을 정한 노동제였다. 그 뒤 1935년에는 주 40시간 노동제에 관한 ILO 제47호 협약이 채택했다. 한국은 1991년 12월9일 ILO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노동제에 관한 제1호 협약조차도 아직까지도 비준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뭔가. 1주 48시간, 1일 8시간의 노동제마저도 이 나라는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주 48시간 노동제의 나라도 아닌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기준법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에 12시간을 더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것은 1919년 채택된 1주 48시간, 1일 8시간 노동제에 관한 제1호 조약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운동은 주 40시간 노동제의 나라인 거라고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누구도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제가 ILO 협약에서 정한 노동제, 세계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외쳐온 노동제가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4. “노동일(노동시간)의 제한은, 그것 없이는 (노동자 계급의) 개선과 해방을 위한 다른 모든 계획이 헛수고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국제노동자협회) 총회는 8시간 노동일을 법률로써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1866년 국제노동자협회가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면서 노동운동사는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서 전개됐다.

그로부터 147년,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가 근로기준법이라는 법률로써 오늘 이 나라에서 규정돼 있다. 그런데 그것이 수상하다.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금속노조 사업장인 현대차·기아차·지엠과 그 협력업체에서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는 준수되고 있지 못하다. 수년 동안 투쟁으로 쟁취해서 올해 3월4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주간연속2교대제는 8시간(1조)+9시간(2조)이다. 이것을 노사가 합의한 것이니 단체협약이 정한 노동제다. 여기다 휴일근로 1일은 기본이다. 이렇게 147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위 국제노동자협회의 노동제는 이 나라 노동운동에도 의미를 갖는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 법이 정한 최대의 노동시간이 아니다보니 이처럼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으로 법이 정한 근로시간을 연장해도 적법한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어 단체협약이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은 당사자, 즉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얼마든지 적법하게 법정근로시간을 12시간 연장하고 거기다 노동부 해석에 따른다면 휴일근로까지도 추가로 연장해서 노동을 할 수 있으니 근로기준법이 규제하는 노동시간은 노동제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기 전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제에 관해서 주장하고 투쟁했다. 1947년 전평이 마련했던 ‘노동법령초안’을 보자. 노동자의 노동일은 8시간제로 하고(제1조), 제정된 노동시간 외의 노동은 원칙적으로 허락하지 않으며 시간외 근로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만 그것도 노동조합단체의 승인을 받아서만 하고 1년에 24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제5조). 1년에 240시간이면 1월에 20시간이고 1주일에 5시간이 안 된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65년전 이 나라 노동운동이 제안했던 노동제이다.

1주일 12시간까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노동자와의 합의로 사용자가 시간외 근로를 할 수 있으므로 1주일에 12시간이면 1월에 50시간을 넘고 1년에 600시간이 넘는다. 여기다 휴일근로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이것까지 합산해서 보면 1년에 1천시간을 넘어서는 시간외 근로도 법으로 제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돼버린다. 이 나라에서는 단체협약이든 법이든 65년 전의 이 나라 노동운동이 했던 제안이 새롭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약 150년 전의 국제노동운동이 했던 제안조차도 새롭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노동제가 이 나라 노동운동의 깃발이 되고 있지 못하다. 이 나라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도 노동운동은 자신의 주장으로 노동제를 외치고 있지도 못하다. 이것은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 권리, 노동제에 관한 무지가 부른 비극이라고 나는 말한다. 법이든 판례든 학설이든 뭐든 모조리 이 나라에서 노동자를 노동운동을 무지에 몰아넣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 1주 40시간, 1일 8시간의 노동제는 법이 정한 최대 노동시간이 아니라 법정외근로 수당 산정을 위한 법정근로와 법정외근로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일 뿐,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일 수 없다. 이것을 분명히 알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제를 자신의 깃발로 들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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