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성동근로자
복지센터
공인노무사

A씨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해당 분야 전문기술사를 취득한 전문가다. A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해당 분야 컨설팅 일자리를 알아보게 된다. 마침 A씨는 기술사협회를 통해 알게 된 한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상담일자리를 소개받았다. 해당 회사인 B사가 준정부기관인 공사이기도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지인과 B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B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A씨를 접촉했음에도 A씨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C사라는 파견업체를 중간에 세웠다. A씨는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이지만 성실하게 근무했다. 주변의 평판도 좋아 당초의 파견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될 무렵 B사로부터 파견근로계약을 갱신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사건은 이 무렵에 발생했다.

"따르릉, 따르릉~"

A씨는 평상시와 같이 상담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상대방은 첫 대화부터 반말을 했다. “아가씨, ○○○ 연결해.” 상대방이 문의한 내용은 A씨의 상담 분야가 아니었다. 그래도 A씨는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 가며 상담을 했다.

“지금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니 연락처를 남겨 주시면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욕설을 했다. A씨는 더 이상 상담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전화를 끊었다.(실제 대화내용은 좀 더 길다)

욕설을 했던 상대방은 B사 감사실에 전화해 항의성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을 접수한 B사는 C사에 A씨를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해고는 과하다고 판단한 C사는 A씨에게 시말서를 쓰게 하고 징계성 교육을 받도록 조치했다. 이에 A씨는 본인의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C사는 A씨에게 감봉 3개월 처분을 했다.

A씨는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C사를 상대로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냈다. 하지만 지노위는 사건을 기각했다. A씨는 C사를 통해 B사에 근무하면서 단 한 차례도 전화상담원으로서의 직무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회사에는 관련 매뉴얼도 없었다. 그러나 지노위는 이에 대한 B사나 C사의 관리책임은 묻지 않았다. A씨는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심판정 심문회의가 있기도 전에 A씨의 근로계약기간은 종료되고 말았다.

전화상담원이 폭언 등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것은 최근 각종 실태조사나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전화상담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자료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일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중심으로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는 악성고객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접한 A씨의 사연은 언론보도와 현실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해당 민원은 녹음기록이 없어 A씨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B사와 C사는 해당 민원의 책임을 A씨에게만 돌렸다. 사실관계조차 불명확한 민원을 이유로 감봉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A씨는 혼자서 노동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공허하기만 했다.

A씨에게 감봉 3개월의 처분은 정당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응당 “여성 전화상담원이라면 항상 친절하고 고객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감내해야지”라는 주술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지노위 역시 여성 전화상담원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내가 저런 전화를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A씨가 파견노동자가 아닌 B사의 정규직이었다면 단 한 차례의 민원에 대해 회사가 이렇게까지 대응했을까.

알 도리가 없는 질문들이지만 이 시대 비정규직 전화상담 노동자들의 뼈에 사무친 절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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