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환자들 대소변까지 처리해야 하는데 일회용 장갑은커녕 마스크도 안 줘요. 집게도 없어 맨손으로 치웁니다." (고려대 청소노동자)

"대청소 때 세척제 냄새 난다고 문 닫고 청소하라고 하더라고요. 반나절 청소하고 났더니 어지럽고 메슥거렸어요." (홍익대 청소노동자)

대학·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유해화학물질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지만 보호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등 건강권에 심각한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중한 업무강도와 신체에 맞지 않는 작업도구를 사용한 탓에 만성적인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서비스지부·노동건강연대·건강한노동세상 등 안전보건단체와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우원식·은수미·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대학비정규직 노동안전실태조사단'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 대학·대학병원(고려대·고려대병원·경희대·이화여대·연세대·홍익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주로 분진이나 물기가 많은 곳에서 일을 하는데도 방진 마스크·작업화 등 안전장비를 지급받지 못했다. 대부분이 자비로 개별구입하거나 공동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업무특성상 안전장비를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청소용역회사들은 한 달에 고무장갑과 면장갑 한 켤레씩만 제공했다.

고대안암병원에서 일하는 김춘순(61)씨는 "각종 의료폐기물이나 환자들의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데 일회용 마스크나 일회용 장갑도 주지 않는다"며 "간호사들이 쓰는 마스크를 눈치 봐 가면서 하나씩 얻어쓰거나 아예 우리가 사서 쓴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물청소나 왁스청소를 할 때는 미끄러질까 봐 신발 밑창에 철수세미를 붙이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청소할 때 사용하는 세척제에는 3급 발암물질·생식독성물질·환경호르몬이 다량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원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여성에게는 생리불순이나 유산, 남성에게는 정자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식독성이 다량 함유된 청소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은 허리·목·손목·팔꿈치·어깨·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주로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고 무거운 쓰레기를 반복해서 나르는 일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길이가 짧은 빗자루 등 몸에 맞지 않는 청소도구도 문제다. 홍대 청소노동자 최현숙(57)씨는 "시간에 쫓기면서 좁은 강의실을 청소하다 보면 여기저기 멍투성이가 된다"며 "요즘은 팔목이 너무 아파 무거운 것을 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지난 10년간 노동부에 정식으로 보고된 자료만 봐도 산재를 당한 청소노동자가 3만1천여명이고, 사망자도 643명이나 된다"며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 국장은 "원청인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명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부지부장은 △학내 '유해물질 지도' 작성 및 공개 △노사공동 노동안전실태조사 △위생시설 개선 및 확충 △원·하청 노동안전보건협의회 구성을 요구했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각종 산업안전에 관한 법·지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종합적·체계적인 근로감독을 실시하도록 노동부에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또 병원·의료기관이 하청이나 도급사업장 노동자를 배제하는 문제나 산업재해 발생시 원청의 관리·감독 책임을 가중하는 문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협의회와 순회점검 관련 규정에서 건물 유지·보수업무가 제외된 문제에 대한 법 개정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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