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자가 있다. 노동조합이 있다. 그런데 왜 있는 것일까. 노동자야 자본의 세상이니까 있는 것일 테고. 그럼 노동조합은 왜 있는 것일까. 노동자를 자신에게 복종시켜 자신을 위해서 노동을 하도록 해서만 자신은 재생산될 수 있으니 자본은 그저 노동자를 복종시키면 될 터인데 오늘 이 세상에서 노동조합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으로 또는 무소속으로 많은 노동조합들이 있다. 이 세상이 딛고 서 있는 법의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을 수정하고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위해서 이 세상의 법이 보장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것이 단결의 자유라고 헌법과 노동조합법이 일반적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 법으로 보장해줬으니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인가. 거기 법이 있으니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인가. 교과서로 배워왔던 이 세상의 공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계약 자유의 원칙, 사회적 약자, 법의 원칙 수정, 그래서 노동조합이 이 세상에 서 있다는 것 말이다. 법은 국가의 질서다. 국가권력이 자신의 힘으로 관철하는 세상의 질서다. 그러니 그 말은 권력이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배려해서 이 세상의 법 원칙을 수정해서 특별히 보장해줘서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본에 맞선 노동의 운동은 그 말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당연히 노동운동사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 단결의 자유, 즉 노동조합을 할 자유를 쟁취해왔던 역사였다고 알고 있다. 분명히 그랬다. 노동조합이 이 세상의 법에 공식적으로 보장됐던 저 19세기 세계노동운동사를 읽어보니 분명히 그랬다. 영국·프랑스·독일의 노동조합이 그랬다. 노동운동이 자본에 맞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일상적인 노동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의 조직, 노동조합을 이 세상의 제도로 세워왔다. 거기서는 법이 아니라 운동이 있었다.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노동자의 운동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법은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뭐라고 선언해왔던가. 당연히 단결의 자유에 포함시켜서 살펴야 할 단체행동권 행사까지는 제외하고서 이 나라에서 문제돼왔던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와 복수노조 설립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에 관한 법은 1953년 3월8일 제정 노동조합법(이하 ‘제정법’이라 함)으로 탄생했다. 제정법은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하며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조직체 또는 그 연합체를 말한다”고 정의했고(2조), 이 노동조합에 관한 법의 정의는 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현행법’이라 함)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정법은 “근로자는 자유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다고 하였을 뿐(6조) 노동조합 조직형태를 기업별노동조합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 이 제정법을 해설하는 노동법교과서는 기업별노조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때때로 어용조합으로서 경영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간섭에 의하여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것은 경영자에 대항하는 조직으로서의 본래의 노동조합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미국에 있어서는 이런 종류의 경영자의 간섭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하여 이를 배제하는 법제를 채택하고 있는 바이다. 필경 기업별조합은 과도적 형태 내지는 반동적 형태로서 설사 그것이 어용조합이 아닌 경우라 할지라도 그 기능은 현저하게 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같이 산업별조합의 조직화가 지연되고 있는 경우에는 산업별조합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 ‘기업별조합의 집적’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충분히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심태식, 노동법, 신구문화사, 1959, 125~126면). 또한 제정법은 복수노조 설립을 제한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 5·16 이후 권력은 모든 노동조합을 해체하고서 노동조합 조직을 산업별노동조합으로 재조직해 한국노총이 설립됐다. 그 뒤 노동조합법 시행령에서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조직된 노동단체는 지부·분회 등 명칭여하에 불구하고 법 제13조의 규정에 의한 신고를 하여야” 하도록 해서 기업별형태로 전환을 유도했으나(1973년 개정),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1980년까지 산업별노동조합의 형태로 존재하게 됐다. 1963년 4월17일 개정 노동조합법은 “조직이 기존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규정했다(3조 5호). 이에 따라 새로운 노동조합의 설립이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봐 제한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1963년 개정된 노동조합법으로 노동조합 조직형태에 관해 노동조합법이 직접 제한하고 있지 않았지만 복수노조의 설립을 제한할 수 있는 법이 도입됐던 것이다. 1980년 5·17 이후 1980년 12월31일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설립에 관해 “단위노동조합의 설립은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단위로 근로자 30인 이상 또는 5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는 설립총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 다만, 특수한 작업환경에서 근로하여 사업장단위 노동조합의 설립이 부적합한 근로자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단위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설립할 수 있는 노동조합 조직형태를 기업별노동조합으로 제한했다(13조 1항). 그래서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서 위대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기록되고 있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이 기업별노동조합의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대투쟁 직후 1987년 11월28일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설립에 관해 기업별노동조합의 형태로 제한했던 위 조항을 삭제해서(13조)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를 근로자가 자유롭게 정해서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자들이 설립할 수 있는 노동조합 조직형태에 관해 제한을 두지 않았던 1953년 제정법 상태를 회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복수노조 설립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돼서 악용됐던 노동조합 정의 규정은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거나 그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로 개악해서 복수노조의 설립을 노골적으로 금지하고 말았다(3조 5호). 이와 같이 1987년 개정 노동조합법은 산업별노동조합 등 초기업단위로 노동조합의 설립을 허용했지만 복수노조의 설립을 전면적으로 금지해 버렸다. 노동자대투쟁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는 노동조합법 개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6년 말 1997년 초 노동법개악저지투쟁으로 1997년 3월 1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새롭게 통합돼 제정됐다. 이 노조법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했던 노동조합법의 위 조항은 삭제됐다. 하지만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제5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2001년 12월31일까지는 그 노동조합과 조직 대상을 같이 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고 했다(부칙 5조 1항). 그리고 노동부장관에게 이 “기한이 경과된 후에 적용될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단체교섭의 방법·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을 강구하라”고 했다(동조 2항). 이로써 산업별노동조합 등 초기업단위노동조합의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고 그에 따라 민주노총과 그 소속 산업별연맹, 산업별노조가 자리를 잡게 됐다. 여전히 사업(장)단위의 노동조합, 즉 기업별노동조합의 복수 설립은 제한됐던 것이고 위 경과조치에 관한 부칙조항이 2009년 12월31일까지 시행 유예됐다가 2010월 1월1일 개정된 현행법에서 폐지했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조합에게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강제하는 것으로 보장됐다. 이제 노동자는 기업단위까지 복수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됐지만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은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통해서 교섭대표노조여야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받게 되었다. 이렇게 제정법은 몇 차례 개정을 통해서 현행법에 이르렀다. 1953년과 2010년 사이에서 이 나라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됐다. 그리고 2010년 개정된 현행법은 제정법이 제한하고 있지 않았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행사를 제한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절차로 이제 노동조합은 교섭권 행사를 제한받기에 이르렀다.

3. 법이 있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노동운동은 이 나라에서 법에 따라 그 하위범주로 노동조합을 조직해왔고 활동해왔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이 나라 노동조합법의 역사는 이 나라 노동조합사이고 노동운동사였다. 그리고 제정법에서 아직도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제정법이 자유롭게 보장했던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는 오늘 “필경 과도적 형태 내지는 반동적 형태로서 설사 그것이 어용조합이 아닌 경우라 할지라도 그 기능은 현저하게 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기업별조합이 지배적이고, 산업별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하고 있어도 그 “산업별조합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 ‘기업별조합의 집적’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충분히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제정법에서 제한받지 않았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로 제한받고 있다. 그러니 법이 아니라 운동이 있었다고 당신이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제정법 이후 60년의 노동운동은 제자리 뛰기도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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