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정부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근골격계 인정기준과 관련해 “신체부담업무로 인하여 연령증가에 따른 자연경과적 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면 업무상질병으로 본다”는 문구를 시행령 별표에 추가했다. 이는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당연한 것이며, 의학적 상식이다.

지난달 15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는 자료집을 통해 “아울러 업무상 질병조사 및 판정시 퇴행성 소견이 있는 경우라도 업무관련성 평가를 충실히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업무지침 보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근골격계 질병은 당연히 퇴행성 질병이다. 그 퇴행성 개념의 인식방법에 있어 기존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연령 증가나 자연적인 발생’이라는 입장에서 산재 불승인을 남발했고 이로 인해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결국 노동부 입장은 업무관련성 평가를 충실히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시인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지침도 “신체부담업무를 장기간 수행한 경우 연령 및 건강상태에 따른 자연경과보다 더욱 빠르게 퇴행성 변화가 유발될 수 있음”이라고 해 놓았다. 그러나 공단은 실무에서 상병코드(M)와 필름(MRI 등)을 위주로 판단했다.

현장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 업무관련성 시트의 구조적 한계, 전문가 평가가 직접 행해지지 않는 점, 재해자의 직력 전체에 대한 조사가 되지 않는 점 등은 근골격계질환 사건에서 공단이 보여 주는 문제점이다. 따라서 개정안은 개선안이 아니라 당연한 판례 법리의 확인일 뿐이다.

직업성 암에 관한 것은 과연 개선인가. 질병범위가 확대돼 산재 승인율이 높아질 것인가. 노동부는 설명자료(2013년 2월)를 통해 현행 기준이 산업구조 및 작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제기된 발암물질 등의 유해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근로자들이 사용하기 쉽지 않아 이를 개선한다고 했다.

일단 개정 내용의 핵심은 직업성 암의 원인물질 14종류를 추가하고, 확인된 12종류의 암을 추가한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실하다고 한 물질은 총 106종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23종류의 물질과 21종류의 암을 직업성 암으로 규정했다. 노동부의 설명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정안에 추가된 물질과 암은 이미 국내에서 산재로 승인된 전례가 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목록에 있는 것이며, 직업환경의학교과서에도 기술된 것들이다.

그 밖에 호흡기계 질병·급성중독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이 추가됐다. 이 또한 노동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과서에 언급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 국내 다수 사례가 있음, 근기법에 명시된 것”이다. 30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있다가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자 ILO 목록에 있거나 교과서에 언급된 일부 물질과 암을 추가하면서 ‘개선’이라고 선전한다.

또 신경정신계질환에 있어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명시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평가가 용이하다고 하며, 전쟁·테러·산업재해·폭행·강간 등 노출시”라고 한다. 현재의 신경정신의학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발병요인이 명백히 생명을 위협하는 외상에 대해서만 진단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병하는 증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노동부의 개정안은 외상(trauma)의 개념에 대해 과거의 기준을 고수하는 것이다. 다수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우울증·공황장애, 특히 수면장애 등에 대해 아무런 기준이 없다.

노동부는 “근로자가 알기 쉽게 개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3을 읽을 노동자는 0.00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유해요인·직업성 암 및 발암물질이 추가됐지만 노동자에게 바뀌는 것은 사실상 없다.

여전히 높은 산재신청의 장벽, 자신의 질병이 직업병인지도 모르는 현실, 무거운 입증책임, 역학조사라는 의학적 판단으로 귀결되는 현실, 역학조사 등 규정에서 불리한 현실, 행정기관의 불합리성 등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바뀐 것은 없다. 오늘도 현장 노동자들은 발암물질이 뭔지도 모른 채 묵묵히 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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