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무기(無期)계약직. 기간제로 일해 본 사람이 아니면 생경한 용어일 수도 있다. 굳이 풀어 설명하자면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를 뜻한다. 하지만 법률적 용어는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신조어다. 2007년 전까지 노동법에서 근로계약의 종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과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으로 구분됐다. 여기서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은 바로 ‘정규직’을 뜻한다. 본인의 잘못이 없거나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는 한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를 의미했다.

그런데 2006년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상시·지속적 업무에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후부터 ‘무기계약직’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정규직과 동일한 고용안정이나 처우를 보장하지 않는 새로운 비정규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새로운 비정규직 유형은 2007년 기간제법 시행을 전후해 은행권·유통업 등을 필두로 대기업과 민간부문으로 확산됐다.

무기계약직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에 비해 차별은 받을지 몰라도 최소한 고용은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무기계약직이 돼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국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2월까지 계약해지된 학교비정규직 6천475명 중 무기계약직이 1천118명에 달한다. 계약해지된 무기계약직의 61%는 정원감소·사업종료·사업변경 등 비자발적 사유로 해고됐다.

실제 행정안전부의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운영규정’에서는 “업무량 변화, 예산감축, 직제와 정원의 개폐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때”, “근무성적평가 결과 최근 5년 이내에 2회 이상 최하위 등급을 받은 때” 무기계약직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에서도 “행정수요 감소로 인한 업무량의 축소, 직제개편 등으로 인원감축이 불가피할 때” 무기계약직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허울 좋은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회피하기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계약해지하고 다른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외주화시켜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교과부는 지난해 10월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담당자는 원칙상 전원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연말연시에만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조리원·전문상담원·특수교육보조원·돌봄강사 등 5천명 이상의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었다. 무기계약직 전환대상 직종에서 아예 제외해 버리거나, 근속기간 2년이 되기 전에 계약해지했다. 10개월에서 11개월 일을 시키고 얼마간 쉬게 하거나, 근무평가 하위자라는 명목으로 해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렇듯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비정규직 대책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규모는 오히려 늘고 있다. 노동부 조사를 봐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시작된 2006년과 비교해 2011년 현재 기간제 비중은 15.9%에서 14.3%로 소폭 줄어든 반면 용역·파견 노동자는 20.8%에서 29.3%로 급격히 늘었다. 학교비정규직만 봐도 2008년 8만8천여명에서 2012년 15만2천여명으로 늘어났다. 현재의 비정규직 대책으로는 정규직이 줄어들고 있다. 소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다수는 비정규직으로 교체사용되거나 외주화되는 관행을 바로잡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2015년까지 공공부문의 상시·지속적 업무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를 약속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2015년까지’라는 문구마저 빠졌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지점은 ‘일부의 무기계약직화와 다수의 고용불안’ 및 ‘고용불안과 차별이 온존하는 무기계약직화’라는 현재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다. ‘몇 년 후 무기계약직 전환’이 아니라 상시적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이라는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것, 정규직·무기계약직·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동일가치 노동에는 동일임금과 차별금지라는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법이다. 이미 19대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법 개정 전이라도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공공기관부터 이런 해법을 실현할 수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