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현 노무사
민주노총
대전충남법률원

지난달 충남 아산에 소재한 사업장 인근에서 이주노동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언론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회사 기숙사에서 업무 종료 후 이주노동자 일부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다른 이주노동자가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자 불을 다시 켜 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결국 살인이 발생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3일 뒤 급하게 연락을 받고 몇 사람과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찾아갔다. 현장에 갈 때까지는 지레 사적인 다툼에 의한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생각했으나, 사업장에 도착해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의 주거 환경을 살펴보고 간략한 문답을 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단순히 이주노동자들 사이의 개인적·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기숙사는 사업장 건물 2층에 조립식으로 돼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칸막이를 쳐 놓고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벌집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숙식을 함께하다 보니 사생활이 보장되기 어려웠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마찰도 빈번히 발생했다고 한다. 내국인 사이에서도 한 공간에 함께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다른 나라의 사람과 좁디좁은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서로 언어가 달라 각자의 요구나 불만을 대화로 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동일 국적의 이주노동자들끼리 함께 생활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개인적 문제도 있었지만 고인은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사업주에게 사업장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4~5일 가량 근무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사업장 변경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고인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근무하기로 했다. 그러다 얼마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이 돼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사업주들이 벌집 같은 기숙사와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를 조건으로 내국인들을 고용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설사 채용이 이뤄진다고 해도 장기간 계속 근무하기 어려울 것이고, 사업주는 사업장 환경을 대폭 개선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아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서는 단지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할 뿐이고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주들의 태도는 상당부분 ‘고용허가제’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입국한 날부터 3년 이내의 취업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은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취업활동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재고용허가 요청이 있어야 한다.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해당 사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환경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고, 사용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사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산의 한 조그만 사업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도 그랬다. 열악한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사업장도 자유롭게 옮길 수 없었던,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서로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배경에는 고용허가제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당하다.

"이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이 국적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회용 노동자로 생각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 왜 사업장을 변경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산업연수생제도 대신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다 됐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는 줄지 않고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런 제도를 한국 정부는 하루빨리 폐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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