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 7기 임원선거가 시작됐다. 6기 임원의 사퇴, 직선제 유예 규약 개정안을 통과시킨 대의원대회의 무효처리,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직선제 실시를 요구하는 전·현직 간부들의 총연맹 점거농성, 직선제 규약 개정안에 대한 재투표, 주요 정파들의 통합집행부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 구성과 협상 결렬…. 정말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지난 4개월간 총연맹 임원선거를 둘러싸고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과연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런 논쟁을 알고 있을까. 아니 혹시나 들었다 한들 관심이나 보였을까. 평조합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최근 많은 소통을 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도 총연맹 임원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지난해 10월30일 대의원대회에서의 대의원 자격과 대리투표 논란 때문에 임원선거가 3개월 가까이 연기된 상황에서도 현장에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대의원 선출 역시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곳이 많다.

민주노총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조합원들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무관심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무관심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현실적 타당성과 별개로 임원직선제를 민주노총의 주요 과제로 밀어올린 힘인 것으로 보인다. 7기 임원선거를 앞두고 소집된 주요 정파 원탁회의에서도 7기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직선제 준비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과연 민주노총의 무기력과 조합원으로부터의 괴리가 이런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노총의 현 상황은 민주노총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의 정세적 유효성이 소멸되면서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임원직선제나 현안 사업장 투쟁의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민주노총은 출범부터 최근까지 밖으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안으로는 산별노조 완성을 전략적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민주노동당 창당과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 등 산별노조 확대라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순간부터 발생했다. 민주노동당을 건설한 후에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은 선거시기 세액공제 후원금 모금, 당원모집 사업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산별노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도 민주노총의 투쟁 사업은 국회에 제도개선 관련 로비를 하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해내야 할 목표도 역할도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산별노조가 그나마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면 민주노총은 그 속에서라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2007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고 지난해에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산별노조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계속 커지며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다.

민주노총의 전략적 목표는 점점 더 실패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정작 그 프로젝트의 주체는 역할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것이 현재 민주노총 위기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를 제대로 세워 내고 열심히 투쟁한다면 두 전략적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별로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상태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민주노조 운동의 주력군이었던 87년 세대와 96년 총파업 세대는 20여년간 새로운 투쟁의 세대를 만들지 못한 채 고령화됐다. 해외공장 증가와 비정규직 확대·대체인력 투입방식의 다양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산업재편으로 민주노조가 실제 파업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적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건 의지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도부의 투쟁 의지나,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식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이제 민주노총의 정세적 유효성을 새롭게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노총의 역할을 정치세력화와 법·제도 개선, 총파업과 같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상적 투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체를 발굴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권리를 누려보지 못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주체의 상황을 직시한다면 민주노총의 정세적 유효성이 눈에 보일 것이다. 민주노총이 그야말로 민주노조운동 조직화의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새로운 노동운동 발전의 선순환을 시작하는 방아쇠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