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아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사건의 경위

망인은 한진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취부작업(가용접)과 용접작업을 해 오다가 2010년 1월10일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같은해 12월10일 사망했다. 망인의 유족인 원고는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부지급처분을 했다.

망인의 업무이력을 살펴보면 1995년께부터 2010년께까지 조선소에서 주로 취부작업에 종사하면서 연강용접을 했다. 작업공간은 옥외였으나 중조립 및 대조립 단계에서는 블록 내부 공간에서 작업했다. 초기에는 석면 내장재가 포함된 선박에 대한 수리 및 해체작업을 했으며 용접작업자와 달리 용접복 및 방진마스크 등 안전장구를 지급받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의 부지급처분 및 심사청구 기각결정

원처분기관인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부산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결과를 근거를 이 사건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부지급처분을 했다. 망인이 대부분 옥외작업장에서 근무했고 역학조사결과 작업장에서 폐암 유발 위험이 크다고 보고된 물질이 발견되지도 않았으므로 이 사건 재해와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부산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이다.

원고가 부지급처분에 불복해 원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심사청구를 하자, 근로복지공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심사청구를 기각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한 역학조사결과 망인의 업무와 폐암 발병 간에 관련성이 낮다는 회신이 왔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는 폐암발생의 위험이 높다고 보고된 물질이 역학조사에서 증명되지 않아서 업무상질환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정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도 망인의 폐암발병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킬 정도의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증거가 낮아 폐암과 업무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만 제시하고 있을 뿐, 망인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의학적 근거가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판결의 결론 “업무상재해 인정”

서울행정법원은 업무상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해 원고의 입증책임을 인정하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입증책임을 완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법원 판례 법리를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산재법 제5조 제1호 소정의 ‘업무상재해’란 근로자가 업무 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또는 그에 따른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되었다고 보아야 하고(대법원 1997. 2. 39. 선고 96누14883 판결, 2000. 5. 12. 선고 99두11424 판결 등 참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이와 같은 법리를 기초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폐암 발병의 업무기인성을 인정했다.

“원고가 약 15년 동안 보호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용접 및 취부작업을 하면서 폐암의 발생 원인이 되는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었고 그 때문에 각종 호흡기 관련 질환에 시달려 온 점, 최근 연구조사결과에 의하면 연강용접도 스테인레스강 용접에 못지않게 폐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점, 망인은 취부작업이나 용접작업 외에도 다량의 금속분진이 발생하는 사상작업이나 석면에 노출되기 쉬운 선박해체작업 등 폐암 발생과 밀접한 유해 작업도 수행한 점, 망인이 작업한 사업장에 대한 일부 역학조사결과에서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발견된 경우도 있는 점, 망인이 25년간 금연하였으므로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생 가능성은 없고, 그 외 폐암에 걸린 혈족도 없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폐암 발생 가능성이 낮아 보이며 달리 폐암 발생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재해는 망인이 장기간 노출되어 온 작업환경이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추정함이 상당하다.”

대상판결의 의의

당초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의 입증책임을 강조했다. 망인이 스테인레스강 용접이 아니라 연강용접을 주로 수행해 발암물질에 노출된 양이 없거나 적었을 것이고 작업공간이 옥외였고 석면을 사용했다는 점도 확실하지 않아 업무관련성이 낮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의 결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 판결은 과거 동료근로자의 증언, 사실조회결과 등을 근거로 반박했다.

법원은 노동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와 질병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등 제반사정을 고려했다. 이에 따라 업무와 질병 또는 그에 따른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됐다고 보고 원고의 입증 정도를 완화했다.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당해 노동자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직업성 암과 같이 노동자가 원인물질 노출 및 노출정도를 엄밀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결론

대상판결은 비록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나, 입증책임을 완화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이로써 직업성 암에 대해 입증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특히 용접공과 달리 업무기인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던 취부작업자에 대해 업무기인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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