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60년이다. 1953년 3월8일에 태어났으니 이제 60년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의 자유권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제정법)이 제정된 것이 60년 전이다. 97년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으로 통합돼서 존속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기념하는가. 지금 이 나라에서 노조법이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해 주고 있다고 기념하는가. 지난달 24일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장례식이 있었다.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158억원 손해배상청구에 절망해서 분노하며 고 최강서는 스스로 죽고 말았다. 어디 최강서만이고 한진중공업만이겠는가.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파업 등 쟁의투쟁을 하고서 손해배상·가압류를 당하고 징계처분을 받고 처벌받아 왔다. 모두가 노조법이 불법이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다. 노동조합을 설립해서 교섭하고 쟁의하는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보호해 주는 법률이 노조법이라고 이 나라 노동자는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 설립, 교섭과 쟁의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법률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법위반을 피해서 노조를 조직하고 교섭과 쟁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노조법을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태어났기에 수 십 년 민주화운동을 거치고, 노동자대투쟁·노동법개정투쟁 등을 겪었음에도 지금 이 나라에서 노조법은 60년 기념은 고사하고 이렇게 이해되고 있다는 것인가.

2. 1953년 3월은 한국전쟁 시기였다. 1951년에서 1952년께 조선방직쟁의·광산노동자파업·부산부두노동자파업 등 전시상태에서 노동자의 파업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됐다. 노동관계입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전시라는 조건에서 ‘노동자들의 쟁의에 대한 급박한 대처를 위해 노동운동 한계설정의 필요에 따라 충분한 법제정 기술상 요구되는 기초연구·조사를 거치지 못한 채' 일본법을 모방했다. 하지만 일본법보다 쟁의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이 제정됐다. 제정될 때 규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이 아니었다. 그러면 당시 제정된 법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법규정이 골치가 아파도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고, 쟁의행위의 주체·대상(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었는지 현행법과 비교해서 살펴보자.

3. 당시 제정노동조합법은 근로자는 자유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면서도 현역군인·군속·경찰관리·형무관사와 소방관사는 안된다고 규정했다(6조). 그때로부터 60년이 흘렀다. 지금도 여전히 군인군속·경찰·교정과 소방의 공무원은 보장되지 않는다. 현행법은 군인군속·경찰·교정과 소방의 공무원이 아닌데도 5급 이상 공무원과 6급 이하라도 일정 업무 종사 공무원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공무원노조법 6조). 그나마도 지금 해고자 등을 내세워 가장 큰 규모의 공무원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받아주지 않고 있다.

제정법은 쟁의행위에 관해서는 노동쟁의조정법이 정하고 있었다. 제정노동쟁의조정법은 현행 노조법이 규정하고 있는 쟁의행위의 기본원칙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지 않았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의 기본원칙이라며 “쟁의행위는 그 목적·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쟁의행위의 목적·방법 및 절차에 대한 규제조항을 두고 있다(37조 제1항). 이 조항은 노조법상 쟁의행위에 관한 법령 등의 준수를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근거규정이 되고 있다. 이것으로 법원은 단순히 행정질서 위반정도로 지나지 않는 행위를 민형사책임이 부과되는 행위로 평가해 왔다.

쟁의행위의 주체를 보자. 제정법은 “근로자는 노동쟁의가 발생하였을 때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쟁의행위를 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5조 1항 본문). 당시 국회속기록을 보면 원안을 제출한 국회 사회보건위원회 위원장도 국회심의 과정에서 “만일에 한 두 사람이 혹은 개인이 파업을 할 생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하지 말라는 법률이 여기에 없다”고 했다. 노조가 아닌 개별 근로자들이 주체가 돼서 하는 파업 등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현행 노조법에서는 근로자가 쟁의행위의 주체임을 명시한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조합원은 노동조합에 의하여 주도되지 아니한 쟁의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해(37조 2항) 노동조합이 아닌 조합원에 의한 이른바 비공인파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행 노조법(41조 2항)이 쟁의행위의 주체로서 제한을 가하고 있는 주요 방위산업체종사 근로자에 대해 제정법에서는 아무런 제한규정이 없었다.

쟁의행위 대상을 보자. 제정법은 일정한 사항은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직접 정한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 현행법은 전임자급여지급 요구 및 근로시간면제한도 초과 요구, 쟁의기간 중 임금지급 요구 등을 관철할 목적의 쟁의행위를 직접 금지하고 있다(24조 5항, 44조 2항).

쟁의행위 신고·시기와 절차를 보자. 제정법은 노동쟁의 발생시 당사자는 즉시 그 상황을 행정관청과 노동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했다(14조). 이는 현행법 시행령도 마찬가지로 규정하고 있다(17조). 제정법에선 위의 보고가 접수되면 행정관청은 노동쟁의를 알선하고 노동위원회가 조정을 하게 된다(15조 내지 21조). 이러한 알선 내지 조정이 실패했을 때 쟁의행위를 할 수 있고(7조 1항), 일반사업은 3주일, 공익사업은 6주일을 경과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고 했다(동조 2항). 현행 노조법은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일반사업은 10일, 공익사업은 15일이 지나도록 조정이 종료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45조 2항). 쟁의행위 사전절차로서 조정제도의 기본적인 구조에서는 차이가 없다. 제정법은 “노동조합을 조직한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할 때는 조합원의 직접·무기명투표에 의하여 과반수로써 결정하지 아니하면 노동조합의 명의로써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었다(8조). 현행 노조법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그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하지 아니하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41조 1항). 제정법과는 달리 현행법은 단순히 조합원인 근로자가 찬반투표 없이 노동조합 명의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에 관해서 보자. 안전보호시설의 정폐 또는 운영을 방해하는 쟁의행위금지 및 중지명령제도는 제정법(6조)과 현행법(42조 2 내지 4항) 모두 두고 있는데 제정법은 위 중지명령위반을 처벌했다(26조). 그러나 현행법은 금지조항위반의 쟁의행위를 처벌하고 있다(91조). 이처럼 처벌수준도 높고 처벌의 대상도 쟁의행위를 바로 규제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제정법은 “쟁의행위는 폭력 또는 파괴행위로써 행할 수 없다”고 해 폭력·파괴행위를 수단으로 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했다(5조 2항). 이에 대해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42조 1항), 그 위반을 처벌하고 있다(89조 1호). 제정법은 단순히 폭력·파괴행위로서 쟁의행위가 진행되는 것을 금지했던데 비해 현행법은 여기에 일정한 시설의 점거라는 방식의 쟁의행위의 금지를 추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위반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정법은 피케팅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었다. 현행법은 “쟁의행위는 그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의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져서는 아니되며 쟁의행위의 참가를 호소하거나 설득하는 행위로서 폭행·협박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극적인 피케팅을 금지하고(38조 1항), 처벌하고 있다(89조 1호). 제정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쟁의행위에 대한 규제조항 중 하나가 현행 노조법의 작업시설 손상 등의 방지작업에 관한 규정이다. 즉 현행법은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 중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38조 2항), 그 위반을 처벌하고 있다(91조).

한편 현행법은 필수공익사업 필수유지업무의 경우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제정노동쟁의조정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제정법은 현행법보다 쟁의행위의 주체·대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 등에서 규제대상이 훨씬 적고 규제수준도 현저히 낮았다.

4. 제정노동쟁의조정법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시라는 조건에서 쟁의행위에 대한 전면적인 보장보다는 어느 정도 제한을 선택했던 입법이었다. 그 뒤 전시가 아닌 정상적인 상태에서 노동법 제·개정사는 헌법상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의 제한과 금지의 역사였고, 그 최종판이 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다. 이 나라에서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에 대한 법률상 보장은 1953년 3월8일 제정된 법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히려 퇴보했다. 그러니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는 법률이 이 나라에서 태어났던 1953년 3월8일을 이 나라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기념할 수가 없다. 해마다 3월8일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받기 위한 투쟁의 날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 노동운동이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 날을 기념하리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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