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06년에 입사해 7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입사 때부터 2010년까지 근로계약을 반복적으로 했기에 저희는 당연히 무기계약이라 생각했고, 별다른 고용불안 없이 지금까지 근무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2년 12월 연말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어떤 절차도 없이 사업이 종료됐으니 저희 보고 그만두라고 합니다. 이유는 저희가 하는 사업이 ‘한시적 사업이라 사업이 종료됐다’는 겁니다.”(학교비정규직 고용불안 해결을 위한 긴급토론회, 기록물관리보조원의 증언 중에서)

전국 학교현장이 겨울 칼바람처럼 몰아닥친 대량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장밋빛 공약이 난무했던 대선 직후 지금까지 수많은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 속절없이 잘렸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달 말 계약만료되는 비정규 노동자가 6천500여명에 달한다. 학교비정규직 관련 노조들의 추산으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새 학기 시작 전까지 해고되는 비정규 노동자 숫자가 1만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교육복지사·방과후 코디네이터·영어회화 전문강사·스포츠강사·돌봄 강사 등 각 직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당하거나 해고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심지어 6년 동안 6번 해고를 당한 기막힌 사례도 있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해고대란이 학교현장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다. 대표적인 공공부문인 학교현장이 눈물과 분노가 넘쳐나는 반교육 실습장이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매년 주기적으로 관례처럼 반복돼 온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회계직원 기준으로 15만여명이다. 누락된 인원을 추산해 합하면 2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여기에 2년 이상 무기계약직 전환을 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비정규직 규모는 8만8천여명에서 15만2천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양산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학교비정규직 증가였던 만큼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난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비정규 노동자를 전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70여개 직종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야말로 공공부문의 대표적인 상시·지속 업무를 하고 있고,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시급하게 요청되는 노동자들이다. 5만여명에 육박하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것만 봐도 그 염원이 얼마나 큰지 증명되고도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이 여러모로 부실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공약은 의미가 있다. 실행된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노동홀대 정책기조로 벌써부터 노동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 행보의 진정성이 검증되는 핵심 공약이 바로 비정규직 관련 내용들이다. 따라서 상시·지속 업무에 장기간 종사해 온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해고대란을 방치한 채 공약 이행을 강변한다면 어떤 국민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유지 능력이 없는 개별 학교장이 생사여탈권을 행사해 오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이제는 교육청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형태로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교육공무직법’이 발의돼 있기도 하고, 교육감이 학교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광주광역시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이미 제정했다.

정부와 교육청이 모범사용자로서뿐 아니라 진짜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치달아 온 노동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청신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를 막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진전시킬 비상한 대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학교비정규직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 이행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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