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준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들어가며
누구든 하얗게 밤을 새워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날 어떤가. 졸리고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몸에 기운이 없으며 머리도 멍하다. 단 하루만 밤을 새워도 이렇게 힘들다. 이런 생활을 수십 일 아니 수 년간 계속한다면 어떨까. 사람에 따라 정도야 다르겠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증상이 만성화돼 질병으로 이어질 것임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이 사건 판결은 이와 같이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에 대한 것이다.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97년 1월경 기아자동차 주식회사에 입사해 자동차 조립공정에 근무하면서 주간조일 때는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까지, 야간조일 때는 저녁 8시30분~오전 5시30분까지 근무했다. 통상 이에 더해 2시간 정도의 잔업을 수행했으며 주·야간 맞교대 근무제의 경우 1주일 단위로 근무조가 변경됐다. 원고는 수면장애·불안장애 등을 진단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지급신청을 했으나 불승인되자, 서울행정법원에 불승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의 신청상병 중 ‘수면-각성장애’ 부분에 대해서만 업무상질병으로 인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다. 이에 원고와 근로복지공단은 각 패소부분에 대해 항소했고 항소심 법원은 위 1심 판결이 인용한 ‘수면-각성장애’에 더해 ‘전신 불안장애’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 및 소송과정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의 상병들과 주·야간 맞교대근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가. 소송 과정과 1심 판결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에게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고 신청 상병 또한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 소인에 의한 질병이라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하면서 본인에게 과로·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위 상병이 발병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원고의 통상적인 근무형태인 주·야간 맞교대근무 자체가 불면증 등 수면-각성장애를 발병 혹은 악화시켰고, 또한 주·야간 맞교대근무와 수면-각성장애가 복합적으로 전신 불안장애 등을 발병 혹은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원고가 주장한 이 사건의 핵심쟁점인 교대제 근무형태와 위 상병들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검토와 판단을 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원고가 주장하지도 않은 과로·스트레스의 존부에 대해서만 검토하고 그 부존재를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근로복지공단의 이해할 수 없는 경직된 태도는 1심 재판 중에도 계속됐다.

1심 법원은 위 상병 중 ‘수면-각성장애’에 대해 주야간 교대근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한 “피고 자문의들의 의학적 견해는 주·야간 교대근무와 위 상병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없어 위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고, 달리 반증이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사유가 이 사건의 핵심을 한참 비켜갔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나. 항소심 소송과정과 판결
항소심은 근로복지공단과 기아자동차의 총력전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내부 소송수행자 대신 로펌을 선임했고, 기아자동차도 근로복지공단을 돕기 위해 소송에 참가(피고보조참가)하고 2곳의 로펌을 선임하는 등 총 3곳의 로펌이 피고측을 대리하였다. 이 사건이 2천만원에 불과한 개별 요양불승인 사건임을 고려할 때 극히 이례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아자동차도 보조참가신청서에서 밝혔듯이 이 사건은 단순히 산재보험료 수가 인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야간 맞교대제라는 작업장 환경에 직접적인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고 그것이 경제계 전반에 미칠 중대한 파급력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고측, 특히 기아자동차는 항소심에서 주로 두 가지를 주장했다. 하나는 원고의 불안장애와 수면장애의 관계 및 그 발병 시기의 선후관계 등에 비춰 이들 상병의 발병이 주·야간 맞교대제와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주·야간 맞교대제는 현재 사회적 논란이 상당한 주제인데 법원이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주·야간 맞교대제 철폐를 주장하는 측을 옹호하게 돼 경제계에 중대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자는 항소심 판결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원고의 주치의 및 진료기록감정의들의 의학적 견해에 비춰 볼 때 피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후자의 경우 판결문에 적시되지 않아 법원이 얼마만큼의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고측은 기존에 법원이 보여준 판결태도에 비춰 이 사건의 사실적·법리적 쟁점보다 오히려 더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 제27조 제1항에는 법관이 재판할 때의 준거로 ‘법률’만을 정하고 있지 국가경제·산업계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사건의 판단에 기준이 되는 ‘법률’은 바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인데, 여기에서도 그 목적을 업무상재해의 신속·공정한 보상 등 재해 근로자 보호라고 명시하고 있지 기업생산성 향상 혹은 국가 경쟁력 제고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원은 원고의 상병과 그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부만을 판단해 이 사건 상병의 업무상재해 해당 여부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가리면 되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헌법 제103조)과 사법부의 독립은 이 사건과 같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하는 사안일수록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헌법은 법관에게 법률과 그 양심만을 기준으로 판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개별 사건의 구체적 정의에 부합하는 해결이라는 소송제도의 목적 또는 본질에 충실한 해석이다. 원고가 이 사건 소제기를 한 이유에 비춰 봐도 그렇다. 항소심은 비록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이 판결을 선고해 피고측의 위 주장을 정면으로 배척하였다. 타당한 판결이다.

주·야간 맞교대제 근무에 의한 불안장애 최초인정

이 사건에 대한 1심과 고등법원 판결은 수면장애 및 불안장애의 상병이 주·야간 맞교대제로 인한 생체리듬의 교란에 의한 것임을 확인해 업무상질병으로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주·야간 맞교대제가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이 구체적으로 인정된 최초 사안이기도 하다. 원고와 같이 장기간 주·야간 맞교대근무에 종사했고, 그 과정에서 수면장애·불안장애 등과 같은 상병이 발병 혹은 악화된 경우 위 상병은 주·야간 교대제 근무로 인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주·야간 맞교대제로 인해 낮밤이 바뀐 채 근무하면 수면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한 이러한 수면장애로 인한 생리적 불균형, 식습관의 불규칙성이 장기간 지속되면 소화성 질환, 각종 사고 및 심지어 정신질환 등에 노출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그래서 장기간의 주야간 교대근무가 수면-각성장애 및 전신 불안장애에 영향을 줬다는 이 사건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학계가 널리 인정하는 주·야간 맞교대제 및 지속적 야간근로의 위험성에 대해 더 이상 눈감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 건강권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며 반성 없이 시행돼 온 주·야간 맞교대제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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