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을 추가하고, 발암물질 노출과 암 발병의 연관성이 확인된 질병을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된다.

노사정이 참여한 '산재보험 제도개선 T/F'가 2년에 걸친 논의 끝에 내놓은 안을 중심으로 고용노동부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개선한 것이다. 직업성 암 인정대상이 확대된 것은 30여년 만이다.

그럼에도 노동계와 재계 모두 못마땅한 표정이다. 백헌기(58·사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이에 대해 "2010년부터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해 왔지만 개선안이 노동계와 재계 양측이 100% 만족하는 합의안은 아닐 것"이라며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상질병 인정 문제에 대한 공단의 역할에 대해 백 이사장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산업재해 역학조사를 공단이 담당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단이 조사를 벌이는 사업장의 경우에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역학조사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시대에 뒤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노동부에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 오후 인천 공단 본부 이사장실에서 백 이사장을 만났다.

- 노동부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나.

"노사정위에서 2010년부터 2년 동안 해당 안건을 다뤘다. 노동계와 재계 모두 100% 만족하는 개선안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확대됐지만 노동계는 부족하다고 한다. 재계는 반대다. 직업성 암에 대한 기준은 근 30년 만에 개선된 것이다. 첫술에 배 부를 수는 없다. 한 번 개선안을 내놓고 앞으로 몇 십 년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단도 사업장 역학조사를 실시할 때 최대한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공단이 제도개선을 할 수는 없지만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시대에 못 따라간다면 노동부에 제도개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건의할 생각이다."

- 최근 사고성재해와 유해 화학물질 사고가 잦다. 안전관리체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산업재해로 매일 250여명이 다치고 6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낮은 안전의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거기에 더해 산업현장에서 안전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전시스템이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규제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강력한 처벌이 아니라 사업장이 자율적으로 안전보건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장에 자율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공단이 해야 할 일이다."

- 올해 초 중대재해예방실을 설치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구미 불산 누출사고·현대미술관 신축공사 화재사고·청주 화학공장 폭발사고 등 큰 사고가 잇따랐다. 구미 사고에서 얻은 교훈은 화학물질에 의한 사고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단에서도 사고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중대재해예방실을 설치해 화학공장 안전진단과 소규모 화학공장 기술지원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사업장 인근지역에 피해를 주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정안전보고서도 작성하도록 했다. 전국 5개 지역에 중대재해예방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공단의 역할이 충분하다고 보나.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이 증가하면서 재해예방 서비스 대상이 늘어나고, 서비스 요구수준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재해예방에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 공단의 재해예방 인력과 재원이 불충분하다. 이로 인해 공단의 서비스가 모든 사업장에 제공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단이 산재예방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을 찾아가면 사업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지원활동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다. 공단의 기술지원을 거부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고위험 사업장에 대해서는 행정조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 맞춘 공단의 사업이 있나.

"공단 사업은 거시적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간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해서 공단의 사업이 확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새 정부가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시대'라는 지상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단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공단의 주요 업무는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예방활동이다. 서민들이 대상이다. 공단은 이와 함께 중소기업에 안전보건 체계를 만들어 줌으로써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중소기업 살리기다. 공단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신규채용 인원의 40%를 고졸자로 뽑겠다고 밝혔는데. 공단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공단 입장에서 40% 고졸자 채용은 부담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는 정부 정책의 취지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공단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조직이다. 산재예방활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민간부문으로 많이 취업하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는 것은 공단의 오래된 어려움 중 하나다.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공단의 특성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 산재예방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일은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기업의 번영과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유지 활동이다. 통계에 따르면 산재사망자 4명 중 1명이 40대 노동자다. 이들은 가정은 물론이고 기업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허리에 해당한다. 40대 가장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가정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산재예방은 정부나 공단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는 없다. 안전이 우리사회의 행동양식과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주변에서부터 안전을 실천하는 노력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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