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이달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밝힌 박근혜 정부의 노동 분야 국정과제 기조는 '대화와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이다. 주요 수단으로 사회적 대타협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없다.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1일 국내 대표적인 노동전문가로 꼽히는 배규식(56)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본부장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한일자리추진단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노동 공약을 총괄했던 이종훈(53) 새누리당 의원의 만남을 주선했다. 향후 5년간 노동정책의 향배를 짚어 보기 위해서다.

이종훈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식 사회적 합의체에 관심이 많고 의지가 강한 만큼 과거 정부와는 다른 획기적 조치를 만들 것으로 본다"며 "어떤 형식이 되든 과거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틀을 만들고 들어오라는 식은 곤란하다. 노사정이 공히 필요성에 공감하고 논의한 뒤 사회적 합의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경제위기 때마다 노사정 합의로 극복했다. 82년 바세나르 협약, 93년 신노선협약, 95년과 99년 유연안정성 협약, 2003년 고용조건 협약 등이 있다. 주요 내용은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사용자가 노동시간단축에 동의하는 것이다.

배규식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가 노동을 경시한 반면 지금은 큰 틀에서 타협할 여지들이 만들어져 있다"며 "정부가 먼저 화두를 던진 만큼 노사도 그 안에서 쟁점에 대해 타협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대담은 한계희 매일노동뉴스 노동정치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정기훈 기자


이종훈 : 대한민국의 노동, 일자리 성적표가 굉장히 안 좋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성적표를 매겼더니 우리나라가 장시간 근로 1위, 임시직 비율 5위, 자영업자 비율이 4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청년 고용률은 29위,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30위,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31위, 보건 및 사회복지 고용비율은 32위였다. 우리나라가 G11이라는 경제적 외형에 비해 노동시장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하다. 이를 G11 수준에 맞게 끌어올리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목표다.

이명박 정부에서 유난히 산업현장의 노사 이슈를 국회로 올려놨다.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제보되고 그게 국회에서 이슈가 된다. 정상적인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정부가 제대로 조정·중재자 역할을 못하고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현장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조정·중재자라는 본연의 역할을 찾는 게 중요하다.

특히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공정거래 질서 확립 등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 데 반해 노동과 자본의 공정분배·상생·협력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빠져 있다. 경제민주화의 한 축이 노동 문제라는 것도 박근혜 정부가 잘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례로 상품시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시장은 금융위원회가 규율하는 것처럼 노동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해 노동시장을 규율할 필요가 있다.

배규식 :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들만 잘 달성되더라도 노동시장의 좋지 않은 것들을 제자리로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제는 공약에 제시된 노동시장 일자리 문제·노사관계 문제 등 이슈들을 얼마나 철저히 달성할 수 있을지다. 대표적으로 '고용률 70% 달성'은 굉장히 야심 찬 공약이지만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 인구구성적인 변화가 연계돼 있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노사관계 이슈를 다룰 때 주로 노사갈등 현안만 다루는데,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거시적인 노동시장의 질적인 이슈다. 노사관계 주체들이 문제를 제대로 보고 다뤄야 한다. 사실 타협할 게 많은 부분이다.

이종훈 “고용률 70% 2020년 달성 가능, 새 정부는 토대 마련”
배규식 “생애주기형 복지와 생애주기형 고용시스템 구축해야”


사회 : 고용률 70% 달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종훈 : 인구구조 변화까지 고려해서 보면 약 200만개의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 사실 박근혜 정부 임기인 2018년까지는 무리다. 2020년까지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근로시간단축이다. 고용률 70%는 근로시간단축 없이는 도달하기 어렵다. 근로시간단축은 법과 제도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 '몇 년도까지 달성하느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시간단축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인 리더십이 있느냐, 없느냐다.

배규식 : 25세에서 54세까지 여성들의 고용률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낮다. 네덜란드·독일·프랑스의 경우 지난 20년간 여성들의 고용률이 10% 이상 뛰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가능한 게 아니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생애주기형 복지'와 더불어 '생애주기형 고용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생애주기에 맞춰 노동시간과 고용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고용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노동시간을 여러 가지 형태로 조절해야 한다. 다만 현재처럼 질 낮은 파트타임 형태가 아니라 정규직 풀타임을 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현재 64%인 고용률을 70%까지 올리는 게 아득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종훈 : 전반적으로 법·제도 개선이 생산직 중심으로만 논의되고 있다. 노동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이트칼라에 대한 근로시간단축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포괄임금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사회 : 현재 고용시장은 고령자가 고용률을 이끌어 가는 시스템이다. 여성고용이나 일자리 나누기로 접근하려면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종훈 : 맞다. 50대의 고용이 늘어나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안 좋은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면서 전혀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창업에 뛰어들고 새로 생기는 것만큼 없어진다. 남편이 실직하니까 주부들도 일자리에 찾는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서 고용률을 늘리는 것은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쉽지 않다.

배규식 : 55세에 퇴직한 사람들이 85세까지 살아야 하는데, 모아 둔 돈은 없고 그렇다고 복지가 잘돼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택할 수 있는 건 장시간 근로 일자리, 자영업처럼 망하기 쉽거나 저임금 일자리밖에 없다. 그래서 생애주기형 고용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정년을 60~65세까지 연장하면 57~58세부터는 노동시간을 확 줄여서 일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임금과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직장을 떠나 질 낮은 일자리에서 장시간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행복하게 일하는 게 낫지 않나. 이를 통해 노인빈곤이나 사회복지비용이 누적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지금 30~40대가 나이 들었을 때 그런 시스템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가 준비해야 한다.

이종훈 "무노조 기업 프랑스식 기업위원회 도입 고민해야"
배규식 "찾아오는 중소기업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올려야"


 

 

사회 : 박근혜 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게다가 일자리 나누기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나.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어떤 고용형태를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이종훈 : 일자리 공약이라는 게 노동 공약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니까 중소기업 공약을 따로 만드는 것이다. 모두 연관돼 있다. 박 대통령이 9988(우리나라 전체 기업 312만개 중 99%가 중소기업, 전체 일자리 1천413만개 중 중소기업 일자리는 88%에 육박)을 가장 먼저 얘기하면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한 것에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규식 : 경제민주화를 얘기해 보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분배 몫을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조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중소기업 자체의 노력도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는 돈으로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다고 최저임금을 묶어 두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중소기업에 좋은 인력이 가서 오래 머무르게 하고 중소기업 내부 혁신과 연결되게 해야 한다.

이종훈 : 동의한다. 최저임금은 올려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최저임금 협상은 국가 임금협상'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고용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견 타당하지만 최저임금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비조직화된 근로자가 너무 많다. 때문에 고용을 크게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최저임금을 '국가 임금협상'이라고 보고 지금보다 전향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 노동시장 규율을 통해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게 만드는 방안은 없나.

배규식 :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교대근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것과 더불어 당장 교대근로를 시행하면 여러 회사가 도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관련 법규정을 제대로 준수하는 게 쉽지 않다. 시그널은 분명히 주되 중기적 계획을 가지고 차근차근해야 한다. 법대로 밀어붙이면 후유증이 클 것이다.

이종훈 : 근로기준법을 강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것보다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하면 지키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다. 실질적으로 단체교섭을 제대로 하도록 제도적인 보완을 하는 것과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법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단체교섭 문제는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풀기 어렵다. 산별교섭으로 해결하자는 얘기가 많이 나왔고, 시도도 됐지만 사실 성공하지 못했다. 독일처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고, 기술 등급에 따라 기업 간 노동이동이 활발하다면 산별교섭이 용이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워낙 환경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기업위원회 방식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노조원과 비노조원 할 것 없이 근로자 대표기구를 만들고 그걸 통해 실질적인 협상을 벌이는 기업위원회 형식이 우리에게 맞는 듯하다. 노동3권과 충돌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만약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진다면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기본권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종훈 : 복수노조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입장은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제도를 시행한 지 몇 년 됐으니까 산업현장에서 어떤 문제점이 나타났는지,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실태파악을 먼저 하자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법 개정이 필요하면 국회에서 논의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현장에서는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급선무인 것 같다. 제도적으로 허점이 없는지 실태파악을 하고, 법·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바꾸면 될 것 같다.

사회 :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기본권 얘기는 없고 사회보험 얘기만 하고 있다.

배규식 : 협동조합 형태로 단결권을 행사하는 방식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 형태로 가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자기들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과잉경쟁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종훈 : 특수고용노동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 만큼 실태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다양성에 맞게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고 법제화 절차를 거치면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종훈 "쌍용차에서 정리해고 문제 교훈 얻어야"
배규식 "노동현안 못 풀면 5년 내내 노사관계 불안"


 

 

사회 : 노동현안이 장기화하고 있다. 정리해고·손배가압류 문제처럼 노사갈등이 정형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규식 : 대통령이나 노조에게도 곤혹스러운 문제다.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조직적으로는 힘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알려서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어쨌거나 노조의 기대만큼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넘어온 부채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5대 노동현안은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 노동계가 원하는 만큼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부는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타협지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삐끗하면 이후 5년간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노조나 야권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국정조사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쌍용차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다 명확히 정리해야 하는 것은 정리해고의 요건과 정리해고 절차의 투명성·공정성이다. 쌍용차 문제는 정리해고 요건이 상당히 불투명한 가운데 발생했다. 정리해고 절차도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쌍용차 사태로부터 우리 사회가 교훈을 얻는다고 하면 이런 걸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훈 : 쌍용차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세 가지 메시지가 있다. 첫째, 대량 정리해고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가능한 피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과 관련해서 정리해고 요건 강화 문제, 무급순환 휴직이라는 카드를 필요하다면 법에라도 넣어야 한다. 둘째, 대량 정리해고가 됐더라도 쌍용차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해고자들을 너무 팽개쳐 뒀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쌍용차 사태라고 하면 정부는 공권력으로 법과 원칙을 세웠다는 것만 공으로 생각했지, 같은 국민으로서 해고자들에 대한 배려와 애정과 사후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박 대통령의 공약에 '고용재난지역 선포'로 반영돼 있다. 셋째, 경영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야 의원들이 공통으로 제기했던 건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경영정상화와 물량확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

앞으로 대공장에서 경영위기가 왔을 때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교훈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를 잊지 않는다면 제2의 쌍용차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배규식 : 프랑스나 벨기에에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길 때 노동계나 제3자가 추천하는 회계사가 들어가서 본다. 실제 정리해고가 불가피한지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쌍용차는 절차상 회계법인과 관련해 불투명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줄여야 한다. 고용재난지역 선포와 관련해 지금 쌍용차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게 자살로 연결된다. '와락센터'와 같이 개별적으로 뜻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힐링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해고자들이 사회적으로 다시 적응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

사회 : 손배가압류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리고 쌍용차 국정조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종훈 : 손배가압류 문제는 노동 문제를 떠나 민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다. 다만 손배가압류를 악용해서 노조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쌍용차 국정조사 문제는 (국회의 해법이) 여기까지 흘러와 버려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3 여야협의체'가 만들어져 있다. 거기서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면 한다. 여야협의체에서 제대로 해결이 안 되면 그 다음에 다른 방식을 강구할 수 있다고 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소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해법을 도출한다는 원칙하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 같나.

이종훈 :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용통이고,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복지통이다. 어떻게 보면 두 분 다 복지통이라서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비서진에 누가 기용되느냐가 중요하다. 박 대통령이 노사정 대화채널을 가동하겠다고 했다. 가령 대통령이 불러서 만나는 노사정대표자회의 형식이 있을 수 있고, 고용노사비서관을 통해 물밑에서 대화할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다.

이를 통해 노동계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민주노총과도 현안이든 제도개선 문제든 하나씩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앞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종훈 "네덜란드 사회협약, 한국식 노사 협의모델 될 듯"
배규식 "민주노총, 사회적 협의체에서 한 축 담당해야"


배규식 : 정부나 민주노총이나 조만간 굉장히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과거 민주노총은 현안 해결에 집중했다. 현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얘기가 안 되고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 경험을 반추해야 한다. 2001년 롯데호텔에서 파업농성이 벌어졌고, 민주노총은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롯데호텔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가 막히니까 정부와 민주노총은 나머지 산적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게 됐다.

만약 이번에도 전략적 선택의 순간에 관계설정을 잘못해서 서로 등을 돌리는 식으로 가면 모두에게 불행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접근법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정부도 배제정책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라도 협의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현안이 100%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더라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이슈들은 계속 논의해야 한다. 현안은 현안대로 해법을 모색하면서 이후 노사정위 참여 문제나 제도적 개선 문제를 다뤄야 한다. 노사정위나 그 보다 넓은 논의 틀에서 참여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사회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종훈 : 노사정위와 관련해서 제도적으로 개선사항을 건의하고 싶다. 노사정위는 본위원회와 상무위원회, 의제별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위원회 회의체계 등급에 따라 한국노총 위원장 혹은 사무총장·정책국장이 참석한다. 이건 의미가 없다.

상무위원회를 빼고 실행위원회와 본위원회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실행위원회에는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들어와야 한다. 사내하도급 문제 같은 경우 현대자동차가 빠지면 무슨 얘기가 되겠나. 현대차 노사와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다 들어와서 얘기할 수 있는 구조로 노사정위를 구성하고 의제별로 적극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사회 : 노사정위 재편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는 별도기구를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종훈 :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 밝힌 대로 대통령은 네덜란드식 사회적 합의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 특사로 유럽을 다녀온 뒤 기자간담회에서 네덜란드 사례를 들면서 한국형 노사관계 협의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지가 강한 만큼 과거 정부와는 다른 획기적 조치를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배규식 : 민주노총은 저항의 정치를 계속해 왔다. 그런데 조직력 등 파워가 월등하지 않을 때는 참여를 통해 상황을 바꾸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공약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비정규직 보호·노동권 강화, 복수노조·타임오프 제도의 합리적 보완 등 노사 간 쟁점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한다고 돼 있다.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지켜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노사정위가 어떤 형태로 재편되든 간에 기능과 역할은 남아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단 (화두를) 던졌으니 노사가 잘 받았으면 한다. 과거에는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양적인 이슈가 주가 됐지만 지금은 고령화·비정규직·구조조정 문제 등 질적인 문제가 이슈다. 이런 문제는 노사가 상호 주고받아야 한다. 실제 노사가 주고받고 타협할 이슈가 많다. 노동계가 98년의 추억(2·6 합의) 때문에 이후 전개될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잘만 되면 한국형 노사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를 경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큰 틀에서 타협할 여지가 만들어져 있다. 처음부터 가능성을 막아 놓을 필요는 없다.

이종훈 : 노사정위도 그렇고 노사정 대타협도 그렇고 정부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고 들어오라고 하는 식은 곤란하다. 어떤 틀을 만들고, 무슨 내용을 다룰지 노사정이 처음부터 함께 논의하고 만들어야 한다. 공감대 없이 진행되면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서로 인식을 같이하려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배규식 : 현재 노사정위가 노동부의 한 부서처럼 굉장히 축소돼 있다.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초기 세팅 과정에서 각 주체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반영해야 한다.

이종훈 : 취임식 이후 박근혜 정부가 어떤 대화채널을 가동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회 : 이제 대담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종훈 : 개인적으로 환노위에서 야당의원들과 대화를 많이 해 보려고 한다. 노사 협상도 사실 비공식 대화를 하고 협상장에 들어오지 않나. 야당의원들과 사전에 충분히 얘기하려고 한다. 환노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의기투합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를 떠나야 하고,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노동자 대중에 공헌하고 열정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배규식 : 어떤 결과가 나올 때는 과정이 중요하다. 테이블 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대화와 소통을 하고, 그 과정에서 차이가 있으면 인정하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어려움과 억울함을 호소한다.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정확히 (정부에) 전달돼야 한다. 정부 또한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큰 귀를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많은 얘기를 듣고, 거기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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