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지난 일요일 새로운 정부의 노동정책을 이끌어 갈 수장이 발표됐다. 방하남. 이름이 생소했다. 보도하는 기자들마저도 프로필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소리에 기대를 가지게 됐다. 적어도 우리나라 최고의 연구기관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연구에 몰두하신 분이라면 그 누구에 못지않은 노동문제 전문가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일부 기사에서는 사실상 사라질 위기를 겪었던 연구원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크게 노력했다고 하니 노동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기대 속에도 일각에서는 제기되는 우려도 있다. 노사관계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는 평가가 그런 것들이다. 물론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을 글의 양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연구원 사태 때 내정자가 보여 준 이력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기우에 그치길 희망하며 나름의 건의를 담아 봤다.

며칠간 집중적으로(?) 장관 내정자가 쓴 논문 몇 편을 찾아봤다. 평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이지만 대체로 일자리와 복지에 관한 것들이 다수였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근로생애와 은퇴과정'에 관한 연구가 눈에 띄었다. 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또는 겪게 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맞춤형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글이었다. 퇴직 후 노동자들의 복지문제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읽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주제를 벗어난다. 만약 이에 대한 논의를 더해 본다면 “정부 혼자서 일자리와 복지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정도일 것이다. 정부가 주도해서 좋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을 잘하면 된다는 고전이론이 현실에서는 언제나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중 노동정책이 가장 심할 것이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책 집행의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을 꼽고 싶다. 노동정책에서 이해관계자는 바로 노동자와 사용자가 그 주체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의 동의를 얻지 못한 노동정책은 언제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짧게는 지난 5년간 경험한 비정규 노동자 정책이 그랬고 전임자 문제도 같은 운명을 걷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노사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결국 집단적 노사관계 분야에 한정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그간 경험에서 보듯 개별적 근로관계 분야의 노동정책도 노사합의 및 동의가 성패를 좌우하는 큰 요인이었다.

최저임금제도와 실업급여제도를 비교해 보자. 다소간의 논쟁은 있어도 최저임금위원회를 거친 최저임금제도는 규범력이 확보된 노동제도로 정착됐다. 부족하나마 최저임금 위반사건에 대한 감독관청의 엄벌도 따른다. 반면에 실업급여제도는 노동자들의 활용도나 기여도 면에서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하다. 노사 동의와는 먼 운영을 해 온 것이다. 실업급여제도의 설계·운영에 있어 노사의 접근을 철저히 배제해 온 탓이 크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노사가 고용보험의 주요 재원을 출연하고 있음에도 이제껏 이들에게는 아무런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실업부조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큰 발전이다.

노사의 참여와 동의를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대화 주체로서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 정부에서는 지난 그 어떤 노동부보다 노조활동의 독립의 보장하고 활동을 보호하는 데 정책의 비중을 높였으면 한다. 노조의 조직률 제고가 노동자의 삶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논리다. 즉 내정자가 말하는 일과 복지를 달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제가 바로 노조 조직률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노조 조직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고도화된 결과라는 주장은 핑계다. 오늘도 언론에서는 사용자의 지원을 받은 노조가 등장하고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들이 보도되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용역에다 이른바 노조파괴 전문가까지 동원되고 있다. 산업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노동3권을 보장하려는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다.

요컨대 비정규 노동자들을 포함해 그동안 소외됐던 노동자들이 조직됐을 때 사회적 대화 결과도 규범력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분쟁해결에서 합의와 동의가 최선의 방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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