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솥단지는 세 발로 받쳐야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 삼족정립(三足鼎立)이다.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역시 같은 맥락이다. 노사관계로 볼 때는 노·사·정의 '3자 주의'나 '고용-노동-복지'를 여기에 빗댈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코드는 무엇일까. 전문성과 안정성(?)이 하나의 기준일 수 있으나, 당선자의 약속이었던 '탕평과 대화합'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7일 고용노동부장관 인사가 있었다. 노동계의 반응은 대체로 '노동이 없다'는 것이다. MB 정부의 '반노동'에서 '노동'을 복원시키고, 노사정 대타협 또는 3자 주의로 '고용률 70% 달성' 같은 일자리 관련 '늘·지·오' 공약을 이행하고, '중산층 70%' 약속을 이루려면 노동을 중심축으로 '고용-노동-복지'의 안정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도 박 당선자가 '무노동'으로 일관하기에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노동부의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바꾼 MB 정부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미이자, 현 시기 노사정 3자의 힘의 관계를 대변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노동'의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5년 전 MB 당선자 인수위가 노동부 폐지 방침을 추진했다가 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고용노동부로 부처 이름을 바꾸고 약칭도 노동부가 아니라 고용부로 바꿔 불러 달라던 노동부 공무원들의 꿈이 실현되는 것인가. MB 정부 5년은 '반노동'과 '대화 단절'로 노동계에게 해결해야 할 무거운 숙제를 던져 줬다. '대화와 소통의 복원'과 '노동의 복원과 부활'이라는 과제다.

이달 초 인수위에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없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와 소통의 장(場)'인 노사정위 폐지 논란과 관련해 한국노총은 일관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노사정위는 그간 활동에 대해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음에도 '노동 없는' 고용-복지 정책 그리고 노동자·노동조합과 소통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꽃피울 수 없음을,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이 의미가 없거나 불가능함을 알기에 그랬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폐지하고 환경과 노동을 분리해 다른 상임위에 붙이자는 안이 백가쟁명식으로 제출되고 있다. 환노위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몇몇도 이런 의견을 냈다. 야당은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노동계에서는 이런 일련의 사태를 MB 정부의 '반(反)노동'에서 새 정부의 '무(無)노동'으로 가는 신호탄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환노위의 전신은 지난 88년 설치된 노동위원회다.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노동문제의 핵심이 저임금·장시간 노동·노동자의 무권리 상태였다면 현재의 화두는 양극화·불안정·차별과 일자리 및 복지다. 이는 대선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전면에 부각됐다. 노동문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환노위 폐지는 '역사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 시대로 돌리자'는 것, '환경을 무시한 개발독재 시대로 환원하자는 것', '대선 공약을 무시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회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무노동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은 민생의 핵심이자, 민주주의의 기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허구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노동과 자본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며,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60년대 이후 개발연대 과정에서 누적된 불균형과 각종 양극화 및 이중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책은 노동과 자본이, 자연과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함께 존중될 때 가능하다. 3자 주의의 부활, 대화와 소통의 활성화로 '고용-노동-복지'가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 노사정위는 확대·강화돼야 하고, 국회 환노위의 폐지는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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