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2일 노사정은 최근 서울 여의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에서 회의를 열고 다음달 중 실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노사정위는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1천800시간으로 줄인다”는 합의문을 2010년에 발표한 뒤 한국노총·한국경총·고용노동부 등이 참여하는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를 구성해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기준 이 나라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749시간)보다 400여 시간 길다. 노사정 합의사항인 1천800시간을 맞추려면 약 400시간을 줄여야 하고, 이를 잔업·특근을 포함해 1일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계산하면 이 나라 노동자는 1년에 약 50일을 더 쉬어야 한다.

언제부터였던가. 정부가 노동시간단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미국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위기상황에서 2009년 초 이명박 대통령도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표명했었다. 오는 25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식을 갖는 박근혜 당선자도 “근로시간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동반성장 전략 추진”을 주요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약에서 “장시간 노동체제는 근로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근로시간단축을 위해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시간 한도 지키기, 휴일근로의 초과근로시간 산입,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축소, 장시간 근로를 강제하는 교대제 개편 등 정책 추진”을 통해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OECD 평균수준으로 단축하여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삶의 질 개선”을 약속했다. 이렇게 지금 노동시간단축이 노사정위를 통한 논의와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2. 지금 노사정위 논의와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노동시간단축 방안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연차휴가 사용 확대, 대체공휴일제, 단시간 노동자 확대 등이다. 첫째,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방안부터 살펴보자.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도 이미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는 연장근로라고 해석된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제1항), 1일의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제2항) 법정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3조는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이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이 경우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백하게 현행 근로기준법이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는 휴일근로라도 당연히 연장근로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 추진할 게 아니다. 단지 그것을 연장근로가 아니라고 해왔던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만 고쳐 일선 노동행정관서에서 사용자의 법위반을 단속하도록 법집행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그것이 아무리 박근혜 당선자의 대선공약이라도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볼 게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고용노동부장관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던 것이다. 더구나 이 방안은 기껏해야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다. 논의되고 있는 둘째 방안은 연차휴가 사용을 확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연차휴가는 노동자의 휴가이니 사용하라고 있는 건데 왜 지금까지 이 나라 노동자들은 사용하지 못했던가. 임금 더 챙기겠다고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기존 임금 그대로 주고서 사용하라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 없이 그냥 사용 확대를 추진하겠다 하면 결국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이 되고 만다. 세 번째 논의되고 있다는 방안은 대체공휴일제다. 법정공휴일과 주휴일이 겹치면 따로 휴일을 주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법정공휴일은 주휴일과 노동절 등을 제외하고는 노동자에게 당연한 휴일이 아니다. 국경일 등은 관공서의 공휴일로 정하고 있을 뿐이다(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서 이를 휴일로 정하고 있지 않다면 이 나라 노동자에게는 휴일이 아니다. 오직 공무원의 휴일일 뿐이다. 그러니 먼저 이를 노동자의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부터 이 방안의 논의는 시작돼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시간단축 방안으로 단시간 노동자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무슨 단시간 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이 노동시간단축 방안의 하나라는 것일까. 아무리 근로자 1인당 연간 평균노동시간을 줄이겠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확대가 답이어서는 안 된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지금 논의되고 있다는 노동시간단축 방안은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3.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라고 한다. 세계 노동운동사를 읽다보면 그렇다고 읽게 된다. 과연 그럴까. 19세기 후반 8시간 노동제는 미국 헤이마켓에서의 노동자투쟁 비롯해 노동자의 구호였고 메이데이(노동절)는 노동자 투쟁으로 붉게 물들고서야 노동자의 날이 될 수 있었다. 그 뒤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투쟁을 전개해서 10시간 노동제를 거쳐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8시간 노동제를 따냈고, 오늘날 세계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의 역사였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노동운동은 자본에 맞선 노동의 권리를 위한 노동자 스스로의 운동이다. 8시간 노동제라면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1일 8시간 노동을 해 주고서 그에 대해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아 살아간다. 19세기 후반에 자동차공장에서 8시간 노동을 하면 그 중 임금의 몫은 몇 시간이었을까. 나는 모르겠다. 5시간이었다고 해보자.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21세기 초반 오늘 현대자동차에서 8시간 노동을 하면 그 중 임금의 몫은 몇 시간일까. 1시간이나 되겠는가. 노동자 1만명의 공장에서 연간 5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노동자 1인당 연간 50대의 자동차를 생산한 것이 된다. 19세기 후반의 자동차공장에서는 노동자 1천명이 1천대를 생산했다면 노동자 1인당 연간 1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던 것이다. 생산의 시설과 기술은 자동차 생산에서 이 정도의 생산력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니 8시간 노동 중 임금으로 노동자의 몫으로 되는 노동시간은 이제는 1시간도 되지 않게 됐다. 19세기 후반의 노동운동이 5시간의 노동 몫을 위해서 8시간 노동제를 노동자의 구호로 내걸고서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노동운동이 여전히 8시간 노동제, 잘해야 6시간 노동제를 자신의 깃발로 들고 있다면 그러고도 과연 노동운동의 역사가 감히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로봇을 말하고 노동을 말한다. 자동생산이 고용 없는 생산을 가져온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고용 없는 생산은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고서 이 세상에 오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단축을 노동의 몫으로 쟁취했어야 할 노동운동이 자신의 깃발로 내걸고 투쟁하지 못해서 고용 없는 세상을 불러 온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으로 자본주의 생산력은 하늘 높이 수천미터를 솟구쳐 왔다. 그런데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해 내야 할 노동운동의 깃발은 8시간 노동제, 잘해야 6시간 노동제를 들고 노동자의 생존을 붙잡고서 고작 2미터도 못되는 높이에서 뛰기를 반복하고 있다.

4.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이다. 위에서 노동운동의 역사가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니 아니니 하는 논의를 말장난으로 만들어 버린다. 분명히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는 주 40시간만 근로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랬다면 노동운동은 단체협약으로 이보다 적은 주 35시간, 나아가 주 30시간만을 노동하도록 소정근로시간을 정해서 그것만 조합원에게 노동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용자에 맞설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노동조합 중 어느 하나라도 그런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을 보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이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이 소정근로시간이라고 근로기준법을 옮겨 놓고 있다. 강력한 노조 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체결한 단체협약조차도 그렇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연장근로 등 법정외 근로를 단체협약에서 허용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나 당사자와의 합의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정해 놓았다. 그러니 현대자동차에서 주야 맞교대제를 오는 3월4일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로 변경한다고 8+9니, 휴일 특근이니 하고 논의를 하는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실시된다고 해도 여전히 토요일·일요일 중 1일을 근무하게 된다면 50시간 안팎 노동을 하게 된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업장조차 이 지경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의 깃발은 노동운동의 깃발이 아니다. 오히려 실업자를 감축하려는 권력의 깃발로 휘날리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법대로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장 주 40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허용하는 단체협약 조항부터 폐지해야 한다. 시급제라서 임금이 삭감된다는 것은 이유가 안된 다. 노동시간단축은 당연히 임금삭감 없이 쟁취돼야 그것이 노동운동의 역사일 수 있었다. 바로 그걸 해내라고 노동조합이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법정근로시간이라도 지켜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시간단축을 자신의 깃발로 들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운동이 들어야만 하는 노동의 깃발이다. 노사정위든 정부든 뭐든 노동시간단축이 권력의 깃발이어서는 노동운동은 없다. 고작 권력에 청원하는 것을 노동운동이라 부르고 만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