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국회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14일 대법원 3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과 관련한 노회찬 공동대표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가공무원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으면 직을 상실한다. 노 대표는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받았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이다. 이 사건의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8년여가 흘렀다.

X파일 사건은 지난 97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도청 전담팀인 ‘미림’이 불법 도청한 사건이다.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대화내용이 도청됐다. 이 파일에는 삼성그룹이 대선 후보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주고,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파일은 지난 2005년 언론에 공개됐다. 주미한국대사와 법무부 차관이 이 사건과 연루돼 사임을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 대표는 파일을 입수해 홈페이지에 떡값을 받은 검사 명단을 공개했다. 실명이 공개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에 반발해 노 대표를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X파일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노 대표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황교안 전 부산 고검장은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을 지휘한 장본인이다.

1심 재판부는 노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떡값 검사 명단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한 것은 언론의 보도편의를 위한 것으로 국회의원 면책특권 대상이 된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인정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실명을 공개한 공익에 비해 검사 개개인의 사생활 침해 정도가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근거를 보면 기가 막힌다. 재판부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는 면책특권으로 보호되지만 인터넷에 관련 사실을 게시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은 국회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국회라는 공간으로 한정한 것이다. 인터넷은 면책특권을 받을 수 없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위해 억지 논리를 들이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대법원은 떡값을 받고, 노 대표를 기소한 검사들의 명예만 회복시켜 준 꼴이다. 이러니 “의원직 상실, 알권리 상실, 정의 상실”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아닌가. 이번 판결로 인해 권력비리에 대한 공익제보와 국민의 알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대법원은 그간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 가능성이 높아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 불법 감청·녹음 등으로 수집된 대화내용을 보도 또는 공개하더라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즉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 노 대표의 폭로는 떡값을 받은 검사들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촉구하는 것이자 대기업과 검찰·언론의 유착을 고발한 것이다. 사법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함이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셈이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은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비록 대법원은 억지 판결을 내렸지만 노 대표의 말처럼 최종심은 아니다. 국민·역사의 심판대에서 노 대표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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