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최근 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수면·각성장애와 전신 불안장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수면·각성장애만 산재로 인정한 지난 2010년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당시 1심 판결은 야간노동을 하는 교대제 근무자의 수면장애를 산재로 인정한 첫 판례였다. 피고인 기아자동차가 대형 로펌 2곳을 선임해 참고인으로 소송에 참여하면서 관심을 받았다. 야간노동의 산재 인정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금속노조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의뢰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무려 80.6%가 수면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제조업종뿐만 아니라 야간근무를 하는 서비스업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들어봤다.

“수면장애를 질병인정기준에 넣어야” 

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법원이 수면장애와 불안장애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 이 판결의 효력을 우리사회 전반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질병인정 기준에는 수면장애에 대한 인정기준이 없다. 최근 노동부는 만성 과로 인정기준에 업무시간 개념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만성 과로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고통이 수면장애다. 주야교대 노동자들이 많이 호소하고 있었지만, 이번 판결 이전까지는 수면장애에 대한 상병을 인정하는 사례가 없었다.

현재 수면장애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산재신청을 하고, 공단과 법적 공방을 벌여 승리해야지만 가능하다.

유전 등 개인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수면장애를 업무상질병으로 신속하게 인정해 줘야 할 것이다. 수면다원검사나 신경정신의학에서 이상이 진단되면 별도의 과정 없이도 산재인정 기준에 넣어야 한다. 수면장애에 대해 구체적 질병인정 기준을 마련하면 가능하다. 이 같은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지만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 조합원 10%가 수면제 복용, 수면장애 실태조사 시급”  

고인섭
금속노조
노동안전실장

주야 맞교대로 인한 수면장애와 불안장애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노사정이 수면장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때다.

수면장애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도 정확한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수면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면장애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10% 가량이 수면제를 복용하는 수면장애 환자로 조사됐다. 예상보다 많은 조합원들이 심각한 수면장애를 앓고 있어 충격이었다.

수면장애의 해법은 수면을 방해하는 교대근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곳이 있다. 교대근무가 불가피하다면 인력확충을 통해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이 답이다. 무엇보다 교대근무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근무형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야간노동을 최소화하고 불규칙한 교대근무는 아예 없애는 게 맞다. 금속 사업장의 경우 물량에 따라 교대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잔업과 특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 교대근무 형태가 불규칙한 편이다.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협의회를 개최해 이런 형태의 불규칙한 교대근무를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해 수면장애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예방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중소 제조업체 심야노동 근절, 정부지원 절실” 

전종덕
|금속노련 정책국장

금속노련 사업장 상당수는 자동차 부품사다. 완성차업체의 공장 가동시간에 맞춰 제품이 생산된다. 완성차업체가 주야 맞교대로 운영되다보니, 대부분의 부품사들도 그 패턴을 따르고 있다.

올해부터 완성차업체에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된다. 그러면 부품사의 노동시간은 줄어들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완성차의 교대제 개편에 맞춰 공장 가동시간을 반드시 조정해야 하는 부품사는 전체의 5%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성차의 교대제 개편이 부품사의 물량 감소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는 업체가 더 많다. 물량의 감소는 임금의 감소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심야노동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는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다. 이번 판결에 나오는 수면장애나 불안장애는 부품사 노동자들도 겪고 있는 문제인데, 개선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심야노동은 노동자 본인의 건강 악화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지금처럼 생계유지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잘못된 관행이 깨지려면 정부의 지원이 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원-하청 불공정 거래의 근절 등 다양한 해결책이 맞물려야 한다.

지난해 총·대선을 치르며 정치권은 너나없이 일자리 창출을 외쳤다. 없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이 더욱 현실적이다. 그런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야간노동 불가피한 병원, 지속가능한 야간근무제도로 개선해야”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야간노동의 질병 유발 문제가 쟁점화되고, 야간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야간노동은 생체리듬을 파괴해 심·뇌혈관계에 각종 질환을 유발하고 특히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조사결과도 발표된 적이 있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후 각국에서 야간근무에 의한 직업병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었다.

병원은 24시간 3교대제로 운영된다. 야간노동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완성차업체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병원은 24시간 운영돼야 하는 특성 때문에 야간노동 자체를 폐지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야간근무제도로 개선해야 한다.

먼저 1인당 야간근무 횟수를 줄여야 한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병원사업장은 1인당 야간근무가 10회를 넘는 곳도 있다. 노조 산하 사업장 중엔 단체협약을 통해 야간근무 횟수를 6~7회로 제한한 곳도 있다. 야간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주당 40시간인 노동시간을 야간근무자는 32~35시간정도로 제한하는 것이다. 또 야간 업무를 조정해서 근무자가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도록 가수면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병원에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건강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 야간근무제도 개선을 위한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야간노동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개선대책을 마련하려면 법·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교대근무 오래할수록 수면장애 심해, 5조3교대 요구할 것” 

신현규
발전노조 위원장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노동자들의 수면장애도 심각하다. 24시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발전노동자의 약 40%가 오전·오후·야간으로 나눠 4조3교대로 일하고 있다. 최근 발전노조와 한국노동보건연구소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건강권 조사를 실시한 중간 결과에 따르면 교대근무 중 80%가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답했다. 이는 근속기간이 오래된 직원일수록 정도가 심해 교대근무를 오래할수록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부터 주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긴 했으나 교대근무자들은 법 기준을 초과하는 주 42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또 발전노조 파괴 일환으로 강제이동이 악용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오후·야간근무를 몰아서 하는 4조2교대가 확산되고 있다.

노조는 가족상봉을 위해 4조2교대식 연속연장근무도 불사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강제이동 원상회복 투쟁과 함께 5조3교대 도입 투쟁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 또한 불가피한 야간노동은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야간노동은 철폐하는 데 앞장서 사업장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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