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이달 26일이면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노동자들의 투쟁이 1천896일이 된다. 그동안 최장기였던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투쟁 1천895일을 넘어서게 된다. 2007년 12월21일 재능교육 사측의 일방적인 수수료(임금) 삭감에 맞서 시작한 농성투쟁이 만 5년을 채웠다. 장기투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오수영·여민희 해고자가 지난 6일 재능교육 사옥 맞은편 혜화동성당의 종탑에 올랐다.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위장돼 있는 학습지교사는 자신들이 가르친 회원 한 명이 내는 회비의 일정분을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받는다.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최저임금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보상도 없으며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어도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 2011년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학습지교사는 하루 평균 12시간 근무에 월 평균 161만750원(노동부 고시 기준보수액)을 받는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4천400원꼴로 법정최저임금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게다가 회원이 줄어들거나 미수회비가 있거나 수수료율이 줄어들면 대책 없이 삭감될 수 있다. 2007년 재능교육 사측이 들고나온 일방적 수수료 삭감안에 따르면 학습지교사 한 명당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백여 만원까지 임금이 삭감된다.

99년 재능교육교사노조를 시발로 대교·구몬·웅진 등에 학습지교사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2001년·2004년·2007년 재능교육과 노조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가짜회원을 양성하고 학습지 교사에게 회비대납을 강요하던 관행을 없앴다. 출산·병가 등의 경우 휴직을 할 수 있고 사측의 일방적 계약해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7년 사측의 일방적 수수료 삭감과 함께 단체협약 해지가 이뤄지고 난 뒤에는 현장에서 다시 가짜회원·회비대납 관행이 되살아나고 부당한 계약해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재능교육은 교섭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해고자 11명에 대한 계약체결 즉시 단체교섭을 시작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지부가 해고자 전원 일시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면서 교섭이 결렬됐다. 혹자는 ‘단체교섭 시작’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어떤 중요한 차이가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지난 4차례의 단체협약 체결 및 갱신 과정마다 사측은 조합비 가압류, 노조간부 고소·고발 등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 정종태 위원장이 오랜 단식투쟁으로 마흔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고 이지현 해고자는 마흔 다섯 나이에 유방암으로 숨졌다.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해고자들이 개별적으로 복직했을 때 노조 인정과 단체협약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5년간 재능교육 사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학습지 교사들과의 단체협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1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직접 “현행법상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종사자들은 근로자가 아니며 학습지노조 등은 적법한 노조가 아니다”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보장 방안을 논의하는 데 왜 노조 인정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이 쟁점이 되는가. 그 이유는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투쟁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사측에 의한 임금삭감을 막고 최소한의 소득보장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 법에 ‘보호대책’을 규정하고 정부가 나서 사용자와 특수고용노동자 사이에 ‘공정거래’를 보장한다고 아무리 애써도,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노동조합이 없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역으로 사용자에게는 어떤 법보다도 부당착취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존재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환노위에 상정되자 학습지회사·보험사·레미콘협동조합이 필사적으로 반대 로비를 펼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번 논의된 후 지금까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대선 전 앞다퉈 ‘비정규직 보호’를 공약했던 여야 정치인 누구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은 멀리 있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을 허용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그것이 7년째 거리에서 투쟁 중인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길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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