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아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어느 날 저녁 사무실을 방문해 법률상담을 받고 있던 버스 노동자분과 야근을 하던 법률원분들이 자장면과 짬뽕을 함께 시켜 먹으며 해당 사업장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사업장의 사장은 복수노조가 생긴 이후 민주노총 소속 노조와는 제대로 교섭에 응하지 않아 현재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정해진 임금조차 매월 일정액씩 떼먹고 주지 않아 이 역시 소송을 진행해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급을 명하는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사장은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회사 재산에 대한 경매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근로기준법 및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에 의해 엄연히 임금지급 의무가 있고, 심지어 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을 줄 수 없다고 우기는 버스회사 사장은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혹시 요새 상영 중인 어떤 영화에서처럼 “대한민국 국민 안 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인지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하기야 버스나 택시 회사 사장의 경우 사업장이라는 하나의 왕국에서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던 모습을 목격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함께 식사를 하던 법률원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자신이 담당했던 이런저런 버스나 택시 사업장 사장들의 비상식적 횡포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는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해 은밀히 CCTV를 설치해 놓고 비위행위를 유도했던 사장, 운전자의 사소한 교통규칙 위반사유에 대해 민원제기를 하도록 탑승객을 교사한 사장, 십수 년간 자잘한 사고 또는 규칙위반 사유를 모으고 모아 수십여 개의 징계사유를 만들어 이를 근거로 해고한 사장,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에서 정하고 있는 징계사유나 징계절차 규정을 무시하는 사장….

유독 버스나 택시 사업장에서는 무법지대인 양 위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듯 느껴졌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말미에 나는 농담 섞어 한마디 던졌다.

“다른 사업장보다도 버스·택시 사업장의 사장들은 유독 배짱 좋은 사람들만 뽑아 놓은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해요.”

그러자 그 노동자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그동안 안 싸워서 그렇죠. 우리가 안 싸우니까 사장들이 그렇게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어리광 섞인 농담 앞에서 그분 스스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내게 이렇게 반문하며 엄한 선배처럼 꾸짖는 듯했다.

“그동안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6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된 기아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는 유서에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구요"라는 내용을 남기고 고된 3년간의 복직투쟁을 접고 죽음을 선택했다. 갑자기 그분이 떠올랐다.

‘그분이라면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을 했을까.’

내 공상 속의 그분의 대답은 사실 너무도 뻔했다. 그리고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난 정말로 그런 뻔한 대답이 궁금한 것일까. 지금 이런 엄혹한 시기, 가슴이 내려앉는 수많은 사건들 앞에서 갑자기 왜 그분의 대답이 궁금한 걸까.’

그러다가 내 생각의 끝은 이러했다.

‘혹시 난 지금 엄한 선배처럼 나를 꾸짖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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