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정확히 5년 전 MB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노동부 폐지를 추진했지만 한국노총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렇게 살아난 노동부가 지난 5년 동안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게 안겨 준 것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 이달 초 한국노총 지도부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면담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폐지 논란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는 그간의 활동에 대해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한국노총은 노동부의 위상 강화와 노사정위의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동 없는 정책과 노동자·노동조합과 소통 없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꽃필 수 없고,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민주화와 복지확충 등이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다 해양수산부 부활을 담은 정부조직개편안의 유탄을 맞고 있다. 새누리당이 새로 생기는 부처를 담당하는 상임위를 신설하는 대신 기존 상임위를 줄여 16개 상설 상임위원회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환노위와 여성가족위가 표적이 되고 있다. 환노위를 폐지하고 환경과 노동을 분리해 다른 상임위에 붙이자는 안이 백가쟁명 식으로 제출되는 모양이다. 노동부 업무를 보건복지위원회에 붙이거나 지식경제위원회에 붙이는 방식이다. 환노위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몇몇도 이런 의견을 냈다고 한다. 야당은 상임위 추가 설치를 요구하며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어떤 안을 선택할지는 정치권 협상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 폐지와 대선공약 수정 논란 같은 작금의 사태가 MB 정부의 '반(反)노동'에서 새 정부의 '무(無)노동'으로 가는 신호탄이 아닌가 우려된다.

노동은 민생의 핵심이자 민주주의의 기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허구다. 국회 환노위를 지식경제위로 편입시킨다는 발상은 노동을 경제의 수단,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자,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발전은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나 풍요로운 삶을 최종적 가치로 두고 이뤄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노동과 자본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며,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60년대 이후 개발연대 과정에서 누적된 불균형과 각종 이중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책은 노동과 자본이, 자연과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함께 존중될 때 가능하다. 노동과 환경을 이윤창출의 도구나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보는 사고는 굉장히 위험하다.

환노위의 전신은 88년 설치된 노동위원회다. 이는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노동문제의 핵심이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노동자의 무권리였다면 현재의 화두는 양극화·불안정·차별과 일자리 및 복지다. 대선 당시 핵심 공약으로 전면에 부각됐다. 노동문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환노위 폐지는 역사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 시대로 돌리자는 것, 환경을 무시한 개발독재 시대로 환원하자는 것, 대선 공약을 무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회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무노동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는 셈이다.

공간과 예산을 이유로 환노위를 폐지한다는 것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로 떳떳하지 못하다. 자신들의 의원 특권과 특혜 포기 약속만 이행해도 해결될 것이다. 혹시 야당이 환노위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일한 여소야대 상임위라서 그런 것은 아닌가 오해받을 수 있다. 산적한 노동·환경 현안 속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여당은 야당의 공세 속에 동네북, 즉 잘해야 본전도 못 찾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경영계가 예전부터 환노위를 지식경제위로 이관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결국 정부·여당과 경영계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노사정위의 흡수통합과 노동부의 기능축소 논란에 이어 환노위 폐지까지 시도되는 것은 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나 시대적 조류를 보면 노사정위의 기능 강화와 위상 정립, 노동부의 기능 확대, 환노위 위상 강화와 노동위원회 위상 제고로 이어져야 한다. 반대방향으로 간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 될 것이다.

국회가 새 대통령 취임 전에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환노위 폐지가 아니라 지금도 강추위 속에서 거리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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