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부원장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게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3년 GM 최고경영자였던 찰리 윌슨이 국방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행정부에 입성하는 것을 두고 반대에 직면하자 말했던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당시에 미국경제에서 GM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할 법도 하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GM의 파산과 국유화를 겪은 후로는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60년 전의 GM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삼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해 쟁쟁한 일본기업들을 연이어 따돌리고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면서 애플과 세계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가 만년 중하위 그룹의 자동차기업 이미지를 벗고 세계 5위로 도약해 품질경쟁력 등을 개선하면서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삼성과 현대차에 좋으면 우리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이 가속화하면서 유력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국민경제와 국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 성장→고용 확대→소득 증대→구매력 증가→수요 확대→생산 확대'라는 사이클이 한 국민경제 안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2007~2011년 경제위기 기간에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선방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그랬다.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1억대 가까이 팔려 나간 삼성의 스마트폰 10대 중 1대 정도만 삼성 구미공장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만든 것일 뿐이다. 나머지 9대는 중국·베트남·브라질·인도에 있는 삼성공장에서 해당 나라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삼성을 포함해 엘지·팬택 등 휴대폰 산업이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해외생산이 35.9%밖에 안 됐는데, 2011년 기준으로는 거의 8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스마트폰이 선전했다고 박수쳤지만 그 대부분은 해외에 공장을 지어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박을 낸다 한들 삼성 구미공장 생산노동자는 1만명 내외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체 휴대폰 관련 일자리도 2000년대 중반 이후 4만명 선에서 거의 고정돼 있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2007년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170만대였고, 2011년에는 190만대로 20만대가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해외생산은 90만대에서 220만대로 무려 130만대나 증가했다. 중국·미국·인도·터키·러시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의 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역전됐다.

삼성과 현대차 등 자본의 세계화는 국내 일자리 감소를 넘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 줬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생산기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자국으로의 생산기지 유치를 위해 임금을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또는 자국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임금상승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 글로벌경제 전체로 보면 글로벌 총수요를 줄여 고용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앤 로빈슨이 주장한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과도 상통한다. 자본의 세계화가 각 국가로 하여금 임금을 낮추는 차선책으로 가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보면 총수요 약화라고 하는 문제가 심화된다.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임금상승을 기대하면서 자국의 임금은 삭감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모두가 임금을 삭각하게 되고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려면 모든 국가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국가 간 정책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점점 더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국내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를 걱정하느라 임금인상을 압박할 수도 없다. 결국 각 국가의 내수구매력과 글로벌 총수요를 약화시킬 것이지만 지금 세계는 수출경쟁과 통화가치 하락경쟁에 몰두하는 중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협력과 해법은 불가능한 것인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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