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남 기자

여성노동자 두 명이 엄동설한, 설 명절을 앞두고 하늘을 지붕 삼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지부장 유명자) 오수영(41)·여민희(40) 조합원은 지난 6일 이른 아침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랐다. 혜화동성당과 재능교육 본사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아마 종탑 위 두 노동자는 하루에도 수백 번 재능교육 본사를 바라볼 것이다.

6일과 7일 농성 소식을 듣고 종탑 아래를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착잡한 심정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두 농성자가 언제 내려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부의 요구는 종탑 건물에 내건 두 장의 플래카드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간명하다.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키고 단체협상을 회복시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요구는, 만 5년이 넘고 이제 1천900일을 향해 가는 이들의 투쟁일수에서 짐작하듯이, 간단히 풀릴 성질이 아니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재능교육 노사가 상당 부분 이견을 좁힌 상태다. 지부는 고 이지현 조합원을 포함한 12명의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고, 사측은 11명 복직을 말하고 있다. 재능교육 관계자는 "이지현씨의 치료비와 위로비 등의 문제는 회사가 유가족과 합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핵심 문제는 단체협상 원상회복이다.

개인자영업자인 학습지교사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부에게 단체협상 원상회복은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인정을 의미한다. 사회적인 화두가 되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보장 논란이 재능교육이라는 단일사업장에서 1천900일 가까이 처절하게 벌어졌다.

이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너무나 오랫동안 떠안긴 것은 아니었을까.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이들에게 "당신들이 이기면 10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도 쟁취할 수 있다"고 강변해 왔다. 유명자 지부장은 "처음에는 단일 사업장 차원의 문제로 싸움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특수고용직의 완전한 노동자성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5년이 넘은 이들의 투쟁은 노동계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원칙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말과 현장과 멀어지는 투쟁을 벌인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칭찬과 안타까움을 반반씩 섞어 '꼴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년의 투쟁 동안 연대하는 동지들이 늘어났지만 떠나가는 동지들도 적지 않았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두 노동자는 호소문에서 "단체협약을 손에 쥐고 환하게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투쟁을 지지해 주고 함께 해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고 밝혔다. 자리를 지키는 진지전에서 돌격전으로 전술을 바꾼 이들은 이제 동지들을 찾고 있다. 꼴통들이 손을 내민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꼴통들이 내민 손을 맞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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