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석 변호사
(해우법률사무소)

1. 사건의 경과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한수원)는 2001년 4월2일 한국전력공사에서 분사해 설립됐다. 원자력 등 발전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으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기업 중 하나다. 한수원의 울진 원자력본부 제2 발전소는 2년마다 경쟁입찰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발전기술지원업무·변전소운전업무·화학시료채취업무를 위탁해 운영해 왔다. 원고들은 위 발전소에서 한수원 정규직원들의 전적인 지시·감독 하에 이 사건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이다. 경쟁입찰로 인해 2년마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변경된 용역업체로 소속을 바꿔 가면서 5년 내지 13년 동안 지속적으로 근로해 왔다. 원고들은 피고에 대해 불법파견임을 이유로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소속 용역업체로부터 근로계약종료 통보를 받게 됐다.

이에 원고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위적으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고 예비적으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것을 이유로 피고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135996 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했음을 이유로 한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피고가 원고들을 직접 지휘·감독하면서 2년을 초과해 근로제공을 받아 왔음을 인정함으로써 예비적 청구인 불법파견을 이유로 한 근로자지위 확인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 회사는 항소를, 원고들은 주위적 청구 부분에 대해 부대항소를 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2. 판결의 주요 내용
위 판결의 주요 내용을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용역업체는 독자적인 사업주체로서 법인세 등 제반 세금을 납부하고, 국민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하였으며, 회계와 결산 등을 피고와 별도로 하고 있는 점, 용역업체는 원고들을 포함한 소속 근로자들에게 임금 등을 직접 지급하고,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연말정산 등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한 점, 용역업체는 피고와 사이의 용역계약과는 별개로 원고들과 임금에 관하여 협상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와 용역업체 사이의 용역계약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용역업체가 사업주로서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명목적인 것이거나 형식적인 것으로서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 중 상당수는 일정 수준의 기술과 그 숙달을 요하는 것으로서 피고 정규직원의 교육이나 지시가 없으면 해당 원고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고, 피고는 정규직원을 통하여 원고들에게 업무수행에 관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던 점, 일근제로 근무한 원고들은 피고 정규직원과 같은 사무실 내에 자리를 배치받고, 같은 회의에 참석하여 필요한 업무지시를 받는 등 피고 정규직원과 혼재되어 근무하면서 각종 지시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보이는 점, 1일 3교대로 근무를 한 원고들의 경우 야간 또는 휴일 근무시 해당 원고들에 대한 출근 확인을 용역업체가 아닌 피고 정규직원이 하였고, 교대근무 배치 또는 그 변경에 관한 권한은 용역업체가 아닌 피고에게 있었으며, 순환근무제의 시행이나 근무제 변경과 같이 근무방법 변경에 관한 사항도 피고가 주도적으로 결정하여 시행한 점, 원고들의 업무수행 결과물에 대하여 피고 정규직원이 확인하고 결재란에 서명한 점, 원고들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장비 및 물품을 피고가 제공한 점, 원고들의 특근, 대근, 휴가 등 근태에 관한 사항도 피고가 관리·통제하였고, 용역업체는 그 실시여부나 시기 등에 관하여 아무런 관리·통제를 하지 않은 점, 원고들은 그 근무기간 동안 업무와 관련하여 피고의 지시나 감독을 받았을 뿐이고, 용역업체로부터는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 바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원고들은 용역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되어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재판부는 부수적으로, 2년마다 소속 용역업체가 변경된 경우 파견법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동일한 사용사업주가 파견법에서 정한 기간 동안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이상 설사 그 동안 파견사업주가 교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직접 고용이 간주되거나 직접 고용의무가 발생함에 지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3. 대상판결의 의미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98년 파견제도가 도입된 후 14년 만인 2012년 현재 파견근로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40%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근로자의 문제는 사기업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사기업·공기업을 불문하고 사용주 입장에서는 파견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인건비 등을 절감할 수 있다. 각종 노동법상의 근로관계에 관한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위장도급의 형태를 빌려 파견근로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충동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 제9조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해 법률에 근거가 없는 한 근로자파견 사업을 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근로자파견 사업을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률 중 하나인 파견법과 그 시행령은 근로자파견이 가능한 근로자파견 대상업무를 32개의 업무로 한정하고 이에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쩌면 위 판결은 파견법상 근로자파견 대상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업무에 대한 근로자파견, 즉 이른바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파견법이 적용되고 파견근로자의 근로기간 동안 파견업체의 변경이 있는 경우에도 파견법이 적용된다는 기존의 법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판결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판결은 공기업도 불법파견의 규제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위 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관한 종래 대법원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했다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파견업체가 독립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견업체가 독립적인 실체를 가졌는지 여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즉 파견업체가 독립적인 실체조차 없는 경우라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이 곧바로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 반면 파견업체가 독립적인 실체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업체가 해당 파견업무와 해당 파견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가 형식적이고 명목적인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피고는 장기간 동안 원고들을 전적으로 지휘·감독하면서 원고들로부터 직접적·계속적인 근로제공을 받았다. 파견업체는 피고가 원고들에 대한 직접고용 실태를 감추기 위해 부여한 외형에 불과하다. 2년마다 변경되는 파견업체는 피고로부터 수령한 용역대금으로 원고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형식적 임금지급의 주체의 역할만 했을 뿐이다.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와 관련해 어떠한 관여를 한 바 없는 노무대행기관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원고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피고가 직접 면접을 치르기까지 했다. 이는 피고가 원고들의 최초 입사 시점부터 원고들을 직접 지휘·감독할 의사로 고용했음을 넉넉히 추인할 수 있는 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위 판결이 기존 대법원의 입장에 안주한 것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기존의 근로자파견에 관한 법리를 재차 확인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면서, 기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관한 법리를 그대로 답습한 지극히 정체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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