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송전탑에 올라가 혹독한 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제대로 된 노사관계나 노정관계는 없었다. 한국노총 역시 정부와의 소통이 끊어진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대화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산적한 노동현안을 풀어 가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다.”

문진국(64·사진) 한국노총 위원장의 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 보궐선거를 통해 위원장에 당선된 지 4개월이 지났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용득 전임 집행부 때 정부를 비롯해 거의 모든 대화창구가 닫혀 버렸다. 닫힌 대화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안 가는 곳 없이 다니고 있다. 청와대부터 고용노동부·한국경총·노사정위원회 등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난다. 다행히 대화는 잘되고 있다.

최근 한광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인수위 인선에 노동계 인사가 배제된 점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고, 새 정부가 노동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했다.”

- 산별연맹(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을 오래 지냈다. 내셔널센터 수장이 된 뒤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조직적으로 어려운 상황, 외부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에 한국노총 위원장을 맡았다. 당선됐을 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감이 무거웠다. 정치방침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위원장이 됐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직이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4개월 동안 현장의 많은 분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각론에서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한국노총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올곧게 서야 수많은 노동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총론에는 대부분 공감했다.”

- 4개월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두 달 넘게 파업을 벌였던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의 파업현장에 한국노총과 연맹 간부가 내려가 투쟁을 지원하고 해결한 것이다. 앞으로 좋은 사례로 남을 것 같다. 현장이 없으면 한국노총은 존재할 수가 없다.”
 
 

 


“조직의 화합·단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을 둘러싼 조직 내분이 지난해 임원 교체로 이어졌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정치방침을 정했던 2011년 12월 임시대의원대회의 효력이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은 어떻게 되나.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정치방침을 정하고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2012년 소위 선거의 해를 보내면서 극심한 조직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잘해 보려고 했던 정치방침이 조직갈등을 야기했다. 찢어진 우산이 비를 막지 못하듯 분열된 노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화합과 단결이다.”

- 공식 의결기구에서 정치방침에 대한 한국노총의 최종 입장을 정리하는 것인가.

“당분간 중앙정치위원회를 열 계획은 없다. 정치방침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리한 단계는 아니다. 계속 검토 중이다. 이달 27일 정기대의원대회가 예정돼 있고, 그에 앞서 18일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린다. 중집이나 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에 대한 질의가 있을 경우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할 생각이다.”

“타임오프로 노동현장 혼란 극심”

-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권 5년의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이용득 집행부 때는 정부와 한국노총과의 대화가 완전히 차단됐다. 점수를 매기자면 ‘0점’이다. 제대로 된 노사관계, 노정관계가 없었다. 다행히 한국노총 집행부가 교체되고 내가 위원장이 된 뒤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만큼은 대화가 협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최근 대한상의가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지급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했다. 타임오프를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기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인데.

“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한상의가 그런 입장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게다가 올해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재논의하는 해다. 경영계가 목소리를 높일 시점이 됐다.

하지만 노동계는 더 할 말이 많다.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국가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협조했다. 만약 최소한의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해 애쓰는 노조간부들이 없었다면, 노동자들은 국가발전의 도구로 전락했을 것이다. 분배 정의 차원에서 노조간부, 특히 상급단체 파견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사가 전임자임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한국노총은 노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근면위를 통한 보완을 얘기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 전망을 어떻게 보나.

“분명히 말하지만 한국노총의 노조법 개정 요구는 그대로다. 다만 타임오프로 인해 현장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조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당선자가 약속한 ‘근면위를 통한 개선’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박근혜 당선자, 신뢰의 정치 펼쳐 달라”

- 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가 내놓은 노동공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더불어 새 정부 노사관계를 전망한다면.

“아쉬운 부분도 있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약도 있다. 박 당선자가 사회 양극화 문제나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고 중산층 70% 복원을 선기기간 동안 약속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공약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냐는 점이다. 박 당선자가 지난해 대통령선거 전에 한국노총을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 한 약속이 있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풀어 가겠다고 했다. 신뢰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는 박 당선자가 약속을 지킨다면 새 정부 노사관계는 잘 풀려 나갈 것이다.”

- 박근혜 당선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한국노총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섭섭하지는 않나.

“박 당선자가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이 국민 대통합이다. 필요하다면 찾아오지 않겠나. 우리가 조급해하거나 섭섭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노총의 힘은 '전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할 때 극대화된다. 새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방향성이 맞다면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새 정부가 노동배제전략으로 일관한다면 우리도 다른 전략과 전술을 찾을 것이다.”

“국민대통합 하려면 사회적 대화 필수”

-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오리무중의 상태에 빠져 있다. 조직이 축소 또는 폐지될지, 아니면 독자적 조직으로 남을지 소문이 무성하다.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주요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입장이 궁금하다.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같은 국정과제를 실천해 나가려면 사회적 대화는 필수적이다. 박 당선자도 대선후보 시절에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현안을 직접 듣고 논의할 수 있는 협의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경제사회 주체들의 이해와 요구를 일치시켜야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적어도 노동부문에서는 노사정위가 그러한 역할을 해 왔다. 지금은 노사정위의 축소나 폐지를 논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노사정위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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