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산이 누출돼 5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재해가 발생한 뒤로 불산 누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산업단지의 한 휴대전화 액정가공업체, 지난 27일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누출 사고가 이어졌다. 4개월 사이에 벌써 3건이다. 불산은 액체 상태에서는 유리와 금속을 녹이고 가스를 흡입하면 뼈가 상하는 것은 물론 숨도 쉬지 못한다는 독극물이다. 독극물을 관리하는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어느 곳도 불산 안전지대라고 안심할 수 없는 셈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불산사고, 원인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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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사망사고 막으려면 원청업체 규제 강화해야”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감시팀장
(공인노무사)

불산 누출사고가 난 삼성 협력업체에는 ‘라인 미정지일수 1천729일’이라고 적힌 전광판이 있다. 해당 협력업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인을 멈추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불산보다 라인정지가 더 큰 공포의 대상이다. 왜일까. 라인정지는 곧 계약 해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산재사망 사고들의 공통점이 있다. 성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한 노동자나, 소리 없이 이어지고 있는 조선소의 사망자들, 그리고 이번 삼성 불산 사고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하청노동자다. 이는 위험한 업무가 모두 도급 형태로 협력업체에 넘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정규직의 산재사망은 줄어드는데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늘고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죽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고와 관련해 원청업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이윤 추구를 목표로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는 기업들이 많은 돈이 들어가는 산재예방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리도 만무하다.

그러니 원청업체에 대한 강력한 처벌규정을 도입해 기업으로 하여금 스스로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하다가는 더 많은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기업살인법과 같은 강력한 제제수단의 도입이 시급하다.

“유해화학물질 관련 부처 일원화 시급” 

현재순
화섬연맹 노안실장

잇따라 터진 불산 사고는 유해·위험물질을 다루는 법과 제도가 허술하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해화학물질은 환경부, 에너지와 독성가스는 지식경제부, 중대산업사고는 고용노동부가 맡는 등 관련 부처가 일원화돼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각자 다른 시스템으로 인해 사고가 나면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유해화학물질 사고에 대해 총체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컨트롤타워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노동부 안에서조차 유해위험물질을 다루는 체계가 9가지로 분류돼 있는데, 분류 체계에 따라 불산이 위험한 화학물질에 포함돼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불소를 사용하는 화학공장의 경우 장비들이 대부분 노후화돼 있다. 이에 대한 사업장 관리가 철저히 돼야 하는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대형 사업장에 한해서만 관리를 하게 돼 있다. 오히려 장비를 관리하기가 더 어려운 중소사업장의 경우 사고에 노출될 우려가 높은 것이다. 또 '을'인 하청업체가 산재예방 조치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원청업체에게도 사업장 관리에 대한 처벌규정을 도입해 안전조치를 강제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유해물질 취급업무 도급 금지시켜야”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

최근 불산 누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안전관리나 정부의 지도점검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런 사고가 많았지만 드러나지 않다가 구미 불산 누출사건 이후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급격하게 누출사고가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부뿐만 아니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서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위험한 공정의 업무를 하청업체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작업이나 유해위험물질 취급작업을 하청 주는 것은 대기업이 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는 안전보건의 양극화를 부른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은 도급을 줄 수 없도록 해야 하는데 현행법은 불산 등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업무가 도급금지 업무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제도적인 허점이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공정안전보고서 이행상태 평가를 더욱 엄격하게 하고 점검주기를 단축해야 한다. 지금처럼 허술한 이행상태 평가로는 언제든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터질 수 있다. 반도체나 전자업종에서 누출사고는 절차나 방제시스템을 갖추면 예방할 수 있다. 기업의 안전불감증도 되짚어봐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처럼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책임과 처벌을 더욱 엄격하게 부과해야 한다.

“기업살인법 제정 시급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반복되고 있는 불산 누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삼성 불산 누출사고에 대한 정확한 진실규명과 함께 화학물질을 비롯한 전반적인 문제기 재검토돼야 한다.

일단 ‘자율안전’을 내세우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점검과 규제를 풀어 왔던 노동부 산재예방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은 1년에 12만톤의 불산과 40만톤의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있었으나, 녹색기업으로 지정돼 점검에서 자유로웠고 반복되는 불산 누출사고도 숨겨져 왔다. 서울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2월부터 7월까지 반년 동안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약 95분 동안 누출이 지속된 사고를 포함해 총 46건의 가스 누출이 있었다. ‘자율안전’이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산재예방을 하는 제도가 아니라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점검과 감독에서 제외되는 면죄부가 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구미 불산 누출사고 당시 전국적으로 화학물질 사용사업장에 대한 점검과 관리 대책을 요구하며 노동계의 참여를 요구한 바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기도의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 대한 일제점검 결과가 무색하게 삼성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노동계·시민사회단체·전문가의 참여가 보장되는 전면적인 재점검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구미나 청주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에 대한 현장조사 요구도 번번이 거부되고 있는데,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과 노동자 문제는 빠진 채 지역주민 문제만 제기되는 것은 불난 집의 불은 끄지 않고 연기만 보고 뛰는 꼴이다.

화학물질 관련 사고에 대해 노동부가 사고조사 과정에서부터 노동계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구조화돼야 한다. 특히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산재사망사고가 결국에는 하급 관리자의 구속으로만 그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반복적인 사고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이 시급하다.

“안전작업절차 준수가 사고 예방의 핵심”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중대산업사고
예방실장

최근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의 특징은 유해물질을 안전하게 취급하기 위한 안전관리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유지보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작업자가 안전작업절차를 준수하지 않거나 설비관리를 부실하게 관리한 것이 사고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기 안전점검 등을 통해 설비의 유지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표준작업절차를 준수해서 정비·보수가 실시되는 예방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누출사고 발생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 비상조치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안전관리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규모 화학공장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안전보고서 제출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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