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자동차 부품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곳에서 곧 버려지게 될 노동자입니다.” 1년 11개월을 시키는 대로 잔업·특근하고 월차휴가 하루도 사용하지도 않고서 하라는 일만 해 왔다는 현대자동차 촉탁직 노동자의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울고 있었다.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 지금 철탑투쟁을 벌이고 있고 이제 10년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게 될 이 나라 비정규직 투쟁의 중심 사내하청 노동자, 그리고 촉탁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를 타고 있다. 촉탁직 노동자는 현대차가 스스로 근로계약서에 자신이 사용자라고 분명하게 쓴 현대차의 근로자다. 그런데 그가 지금 울고 있다. 현대차에서 촉탁직이라는 불리는 그는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명시돼서 현대차에서 그 생존기간이 정해져 있는 시한부노동자다. 우리 세상의 법은 그를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제 근로자라고 규정했다(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2조 1호). 지금 이 나라 수많은 사업장에서 계약직이라고 불리우는 비정규 노동자의 운명이 바로 현대자동차에서 그의 운명이다. 그러니 현대자동차 촉탁직 노동자의 눈물은 이 나라에서 계약직이라고 불리우는 기간제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일 수밖에 없다. 2010년 4월 기준으로 고용노동부가 조사결과로 공식적으로 밝힌 기간제법상 사용기간 제한(2년)이 적용되는 노동자 121만명의 눈물이다. 도대체 이 눈물을 어째야 하냐고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자.

2. 기간제법에서는 기간제 근로자를 2년 넘게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즉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4조 2항). 그렇다면 그는 현대차의 정규직이 될 꿈에 부풀어 웃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지금 울고 있다. 이 나라에서 기간제의 비정규 노동자는 2년이 넘을 그 날을 기다리고 있어야 마땅함에도 그들은 지금 울고 있다. 기간제법이 고용간주 되도록 사용기간을 제한한 2년은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절망으로 되는 시간, 현대차에서 쫓겨나야 할 시간이다. 이 나라에서 기간제의 비정규 노동자에게 2년은 자신이 일하던 사업장에서 쫓겨나야 할 시간이다. 이렇게 될 거라고 2006년 기간제법 제정을 추진할 때부터 말했다. 그럼에도 기간제의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밀어붙였다. 아무런 제한 없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기간제법으로 보장하고 말았다(4조 1항). 그러니 그때 이미 기간제 노동자의 눈물은 예정돼 있었다. 지난해 8월2일부터 시행된 개정파견법은 하루라도 불법파견 근로를 사용하면 사용사업주가 직접 자신의 근로자로 고용할 의무를 규정했다(6조의2 1항). 이미 법원에서 현대차 자동차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근로는 불법파견이라고 판단을 받았으니 사용자 현대차는 필요인력을 사내하청근로가 아니라 이 촉탁직의 기간제 근로를 사용해 왔다. 그렇게 현대차는 당장 파견법 적용 시비는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간제법이 문제였다. 2년을 넘겨 사용하면 즉시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고용간주되니 문제였다. 그러니 사용자 현대차는 기간제법을 피하겠다고 2년을 넘기기 전에 쫓아낸다는 것이고 촉탁직 노동자는 울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기간제법상 2년 사용기간 제한이 적용되는 수많은 기간제의 비정규 노동자는 울 수밖에 없다. 노동부 조사결과에 의하면 위 121만명의 기간제법상 2년 사용기간 제한이 적용되는 노동자 중 같은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속한 기간제 노동자 49만5천명이다. 이 중 오직 4만2천명만(8.5%)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노동부는 39만2천명의 무기계약 간주자까지 포함하면 43만5천명(87.8%)이 기간제법에 의해 고용이 보호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기존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이라는 차별적인 직군 제도로 기간제법상 사용기간에 제한없이 사용하는 것까지도, 그리고 그조차도 못되는 자들까지도 무기계약간주자라고 했다. 마치 기간제법에 의해 기간제의 비정규 노동자가 보호를 받게 된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렇게 지금 기간제법은 기간제 노동자 10명 중 1명 정도도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 그저 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적법하게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노동법은 노동자의 고용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

3. 현대자동차지부의 규칙은 현대차 노동자로 입사하면 조합원이 되도록 하고 있다(7조). 그러니 촉탁직도 현대차 노동자인 것이 분명하니 사용자 현대차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서 입사한 순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조합원이 돼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울고 있는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는 조합원이 아니다. 노동조합, 즉 노조법상 단위노조인 금속노조도 그 소속 현대자동차지부도 조합원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현대자동차 단체협약은 촉탁원은 예외로 하고 있다(6조 1항 8호). 노조가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규약에 따라 조합원으로 해서 교섭하고 쟁의하겠다 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는 “조합원 여러분, 노동조합은 조합을 위한 조합입니까. 노동자를 위한 조합입니까”라며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고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편지를 보내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자동차생산공정에서 상시적으로 정규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촉탁직이라 갖다 붙인다고 촉탁직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조가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라고 조합원이라고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으니 그는 스스로 서럽다 울고 있다. 1년 11개월을 근무해 왔으면 필자가 지난해 초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근로자소송으로 현장검증 갔을 때 울산공장 생산라인에서 그는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인지 살펴보겠다고, 파견근로면 정규직 인정해서 보호해 줘야 한다고 판사들과 변호사들이 심각하게 라인을 따라 돌았는데 그때 나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내게 묻고 있지 않았을까. 촉탁직 노동자, 시한부인 내 노동의 권리는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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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정규직 문제, 지금은 온전히 노동운동의 과제가 되고 있지 못하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임시직·일용직·계약직·촉탁직·사내하청 등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가 있다. 최근에는 기간제법을 피하려고 무기계약직으로 둔갑시킨 정규직이 아닌 그들이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수준에서는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쳐대고 있지만 소속 노조나 사업장조직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나서고 있지 못하다. 규약이 조직대상을 ‘00회사 노동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비정규직이라도 조합원으로 받아서 사용자에게 기존 단체협약을 적용하라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췄다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조차도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해서 지금 촉탁직 노동자를 울게 하고 있다. 규약에서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을 제외하고 있는 노동조합이라면 규약 개정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노조의 일이 그들의 일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든 보호든 뭐든 노조가 단체협약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노조가 하지 않으니 그들이 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노조의 일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노조가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는 자신의 구호일 수 없다. 그건 눈을 부릅뜨고 보면 노조의 구호가 아니다. 그러니 상급조직의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 철폐로 총파업에 참여했다 해서 변명이 되지 않는다.

5. 지금 보수의 당조차도 비정규직 문제를 말하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조차도 비정규직 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상시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고용관행을 정착하여, 비정규직 근로자의 실질적 고용안정을 실현. 비정규직의 비중을 OECD 평균 수준까지 낮추도록 노력”하고, “국가·지자체·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경우 우선적으로 상시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을 폐지하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유도”하며, “대기업은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단기간 근로자에 대해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대기업에게 매년 근로자의 고용형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여 공시하도록 하여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관행을 개선”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선자로서 박근혜는 대기업총수를 만나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당부했다. 한화그룹은 비정규직 2천43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노동자 문제라고 해서 당연히 노동운동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노동운동이 자신이 해 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건 권력의 일이고 자본의 일이 되고 만다. 노동자 문제가 노동운동의 일이 아닌, 보수든 민주든 뭐든 그들의 일이 되고 만다면 노동운동은 없다. 노동자 문제를 그들이라도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들이 해결하는지 감시하고 지켜보겠노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이 나라에서 진보의 당들에서 그런 자들이 넘쳐난다. 복지든 노동이든 무슨 깃대 정당인지 뭔지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당신을 바보라고 부르겠다. 그건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짓이다. 노동자 문제가 자신의 일이 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는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버려지고 말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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